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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오징어 게임’ 시즌 2

[칼럼]‘오징어 게임’ 시즌 2

기사승인 2021. 10. 23. 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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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황석 문화평론가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붐이다.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이어진다. 이제 붐을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지구촌을 리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그러나 한편으론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아니 현실을 뛰어넘어 우리가 어떤 현실에 살고 있는지 직시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영화와 같은 허구의 장르에서 현실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풀어놓지는 않는다. 내러티브라는 특별한 장치를 통해 관객이 극에 동일시되기도 하고, 반대로 주의가 환기되기도 한다. 비유하자면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들이 게임장 구석구석을 CCTV로 관찰하듯이 우리도 드라마라는 카메라를 통해 우리의 삶에 대해 주관과 객관을 번복하며 바라보게 된다.

오징어 게임은 표현주의적인 장치와 리얼리즘, 때론 서사극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가며 절제된 연출을 시도하고 있다. 황동혁 감독은 드라마라는 호흡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관객과의 ‘밀당’을 도모하며 극을 이끌어간다. ‘수상한 그녀’와 ‘남한산성’을 통해 연출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솜씨답게, 장르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회차마다 장치를 마련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한다. 너무 친절한 연출은 식상하기 마련인데, 오징어 게임은 과잉되지 않은 힌트와 거리를 남기며 시청자와 함께 호흡을 유지한 채 시즌 1을 마무리한다.

위와 같은 연출로 인해, 현재 대중들은 시즌 2에 대한 기대에 차있다. 이로써 콘텐츠 시장은 더욱 풍성해진다.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기대하고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모든 예술 장르가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는 측면에서, 오징어 게임은 분명 성공적인 작품이다. 연장선상에서 영화의 엔딩신은 아이러니컬하다. 막이 내리기 직전, 주인공의 뒷모습을 따라 쫓아가던 카메라가 멈추고, 이내 돌아선 그가 눈을 부릅뜨며 화면을 뚫을 듯이 정면을 향해 걸어 나온다. 그런데 관객은 이미 드라마 곳곳에 배치된 퍼즐 조각으로 인해 시즌 2를 상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벌써 동일시된 관객은 오징어 게임의 시즌 2의 막 안으로 들어와 버린 셈이다.

한편 ‘낯설게 하기’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마지막 신 배우 이정재가 뛰쳐나온 시즌 2의 공간은 스크린 밖의 현실이기도 하다. 잠시 드라마에 몰입되어 현실도피를 꾀한 관객들은 주인공의 눈과 마주치게 되는 도발적 정면 쇼트와 카메라 워킹으로 인해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잠시 현실을 잊은 시청자들은 다시 현실과 맞부딪히게 된다. 현실은 이미 누구도 아닌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그렇게 양가적인 방식으로 그 구조로부터 소외당하는 자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과 직면하게 만든다.

같은 맥락에서 극 중 눈에 띄는 설정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게임의 주최자가 참가자들에게 강조하는 몇 가지 핵심적인 규칙들이다. 게임의 참가 여부는 자유의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게임에 참가한 이후엔 공정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대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부연하자면 게임판을 벌인 자들이 아주 구체적인 대사로 ‘민주적 절차’를 이야기하고, ‘평등’에 대해 언급한다. 그러곤 연대를 유도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게 구조를 짜놓는다. 사실 현실의 우리 또한 각종 매체가 짜놓은 전체주의적인 구조에 갇혀 민주주의를 논하고 평등에 대해 말하며 연대를 꿈꾼다. 그러니 요원한 일이다. 그와 같은 구조에선 아무리 인류애를 실천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판이 이미 촘촘하게 짜여 있다.

역설적이지만 오징어 게임의 세계적인 열풍으로 인해 인류는 또 하나의 보편의 정서를 공유하게 되었다. 한동안 우리는 이러한 정서적 공유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객관화할 열쇠를 쥐게 되었다. 그러나 누가 그 열쇠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은 다른 문제인데, 이는 마치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의 딜레마와도 닮아있다. 사실 현실 세계에서 유일한 길이 한 장의 투표권이라는 점은 이미 드라마에서 명시되어 있다. 그것은 웃프게도(?) 바로 게임판을 벌인 자들이 주고 간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그려진 명함이 상징하는 바이기도 하다.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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