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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 조은산이 말한다] 쇼의 정치

[진인 조은산이 말한다] 쇼의 정치

기사승인 2021. 11. 08.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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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누군가가 당신에게 오늘 저녁 무슨 음식을 먹었냐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이제 당신은 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당신의 대답은 실제로 먹은 저녁 식단에 초점이 맞춰지겠는가, 아니면 그 음식을 얘기했을 때 터져 나올 주변인의 반응에 맞춰지겠는가.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자유로운 방식으로 거리낌 없이 표현될 것이다. 음식의 국적에 구애받지 않고 가격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평범한 시민에게 표현의 자유를 포기할 만큼의 정치·사회적 이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특수한 상황에 놓였다거나 특수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겐 더욱더 말이다.

가령 그 정치인들에게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었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이들은 돼지국밥,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등 서민적이고 대중적인 음식들을 늘어놓을 게 뻔하다. 그것은 그들의 정치적 이익과도 연관되어 있지만, 역으로는 현실 정치가 그들에게 답변을 강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라. 만약 어느 정치인이 “나는 오늘 저녁에 오성급 호텔의 고급 일식집에서 일본인 셰프가 제공한 ‘오마카세’와 ‘사케’를 곁들이며 한민족의 얼을 느꼈다”고 답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당장 토착 왜구라는 비난과 함께 서민의 삶에 대한 몰이해를 지탄당한 그에겐 곧 여론에 치이고 언론에 갈리며 철저히 분쇄 당할 일만 남았을 뿐이다.

또한 이런 예시는 지역 구도에 봉착한 정치인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대입 가능한 부분이다. 예컨대 호남 지역을 방문한 어느 정치인이 “나는 제대로 삭힌 홍어를 먹으며 지독한 냄새에 그만 코를 틀어막았다”고 답하고, 영남 지역을 방문한 다른 정치인이 “나는 부산의 명물 돼지국밥에 부추를 쏟아 넣으며 보수의 심장이 뛰고 있음을 느꼈다”고 답했다 치자.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지역 비하 논란에 휩싸인 전자는 곧 출당 조치가 진행될 것이고 지역감정에 충실했던 후자는 당장 부산의 아들로 재탄생할 것이다. 이처럼 정치인의 진심은 대중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그 진의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것이 현실 정치의 세태다.

우스꽝스럽고 극단적인 예를 들어봤지만 결국 국민은 정략적 판단이라는 명분에 가려 그들의 진실한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그럴 수밖에 없는 정치 환경을 만들어 왔고, 정치인의 자질을 기본적으로 진실보다 거짓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하며, 정보의 전달보다는 정보의 확장 및 왜곡 가능성에 더욱 초점을 맞추도록 강요해 왔다. 그래서 우리는 한 정치인의 무궁한 신념 속 순결한 이념을 결코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옥탑방에 기어올라 서민의 고통을 몸소 겪어보겠다는 식의 쇼의 정치를 초래한 건 우리 자신이 아닐는지.

나는 에르메스 정장과 구찌 벨트를 두른 정치인을 접하며 그의 이미지보다 그가 가진 정책 역량에 더 집중하고,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광주를 찾아 홍어를 씹고 부산을 찾아 돼지국밥 대신 평양냉면을 먹을 수 있는 그런 열린 정치를 언젠가 꼭 보고 싶다. 지난 경선 과정에서 쓸데없는 논쟁으로 소모된 시간을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최소한 서민팔이는 하지 말고 지역감정을 이용해 비하 논란을 일으키지 말자. 그 또한 구태 정치다. 이제 그만 벗어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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