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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다임은 출범 4개월 만에 SK하이닉스와 기업용 SSD 합작 신제품을 공개하는가 하면, 미국 산호세 인근 랜초 크로도바에 연구개발(R&D) 캠퍼스를 마련했습니다. 앞서 3월에는 이석희 전 SK하이닉스 사장이 솔리다임 의장으로 선임돼,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솔리다임 본사로 활동 무대를 옮기도 했습니다.
신제품 출시가 이어지는 가운데 최근 솔리다임이 공개한 D7-P5520 제품에 여전히 ‘인텔’ 마크가 붙어 있는 게 눈에 띕니다. D7 시리즈는 솔리다임의 데이터센터용 SSD 제품 중 최고 사양 제품으로, 이전 제품인 P5510은 높은 판매고를 올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업계는 솔리다임 제품이 인텔 이름을 달고 출시된 이유로 아직 SK하이닉스와 인텔 간의 인수합병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말 인텔 낸드 사업부 인수대금 90억 달러(약 11조6000억원) 중 70억 달러(약 9조원)를 인텔 측에 지급하고 1차 클로징을 완료했습니다. 남은 20억 달러는 2025년 3월 지불해 양사 간 거래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입니다.
아직 거래가 완전히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인텔이 개발해 출시해 왔던 D7 시리즈의 지적재산권(IP) 등이 다 넘어가지 않았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조단위 거래가 이뤄지고 대규모 인력·생산 설비 등의 이동이 수반되는데, 이 같은 큰 변화에 비하면 브랜드를 어떻게 다느냐의 문제는 아주 작은 부분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솔리다임이 SSD 기업으로 입지를 다질 동안 인텔이라는 큰 브랜드를 당분간 빌려 쓸 가능성을 거론합니다. ‘르노삼성’이 지난 2000년부터 올해 3월까지 약 22년간 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해 한국 시장을 공략한 것처럼, 솔리다임 역시 기업용 SSD 강자였던 인텔의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 안정적인 시장 안착을 노릴 수 있다는 시각입니다. 인텔은 브랜드 사용료를 받거나 자사 이름을 홍보할 수 있고, 솔리다임은 신출내기 이미지가 아닌 기존 인텔의 SSD 기술력을 고스란히 가져온 회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윈윈(win-win)이 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SK하이닉스는 자회사 솔리다임 제품 브랜드 정책을 어떻게 가져갈지 구체적으로 공개하진 않았습니다. 인텔 브랜드를 솔리다임 제품에 쓰는 것이 회사 안정화를 위한 전략인지, M&A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도기적 현상인지 현재로선 알 수 없습니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올해 기업용 SSD 시장에서 세계 점유율 2위로 단박에 오른 점, 1분기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한 점 등을 감안하면 “D램과 낸드 양날개로 비상하겠다”고 밝힌 인텔 인수 포부는 이미 상당부분 근접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