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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의 유통피아]분구필합 합구필분의 한반도와 재벌가

[최성록의 유통피아]분구필합 합구필분의 한반도와 재벌가

기사승인 2022. 06. 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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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막기 위해 찢어질 수 밖에 없었던 기업들
내수 시장 탈피 위한 '적과의 동침'도 늘 수 밖에 없어
최성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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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록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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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도 대학입시부터 수학능력시험 즉, 수능이 처음 도입됐다. 모든 일의 시작에는 공통점이 있다. 시행착오는 물론 반발이 엄청나다는 점이다. 교육정책의 경우 더 그렇다.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사지선다가 아닌 오지선다, 제시된 조건·근거들을 적절히 조합한 정답 찾기, 논리적 사고를 요하는 문제들, 상·하반기로 나눠 두 번 치르는 시험 등등...“이건 뭐야”라는 반응에 전국의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다.

학력고사처럼 달달 외워서는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심도 있고 다각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나무가 아닌 숲, 즉 큰 틀에서 사고하는 훈련을 하라

이런 전문가들 조언이 TV와 신문에 넘쳐났다.

오늘날 IT·게임 기업에서 개발자를 채용할 때 인문학 소양을 갖춘 융복합 인재를 찾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까. 실체조차 불분명한 정답을 찾기 위해 수험생과 부모, 교사들 사이에 대혼란이 펼쳐졌다.

누구는 이런 방법으로, 또 다른 누구는 저런 방법으로 수능에 대비하라고 외치던 와중에...

홀연히 나타난 서울대 수석합격자의 인터뷰. 그는 여러 말을 했지만 다 묻히고 단 하나의 말만 남겨졌다.

# “이문열의 삼국지를 열 번 넘게 읽었다”

파급력은 엄청났다. 학생들 모두 서울대를 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교사들은 삼국지를 강요했다. 오락실 갈 시간, 만화나 TV를 볼 시간에 삼국지를 읽으라는 교사들의 협박과 권유도 빈번해졌다.

어떤 교사는 숙제를 안 하거나 지각을 할 경우 “새 책을 사서 오든, 집에 있는 것을 가져오든 삼국지를 교실에 갖다놔라”고 명했다.

이런 지시로 교실 제일 뒤에 형식적으로 있던 학급문고(책장)에는 온갖 삼국지들이 난무했다.

새 책을 사올 수 없었던 학생들은 집에 있는 삼국지를 가져왔다. 80년대에 출판된 정비석의 삼국지,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삼국지, 어린이 삼국지까지…. 심지어는 아버지 시대에나 봤을 법한 세로로 읽는 삼국지도 있었다.

누구나 읽을 수밖에 없는, 삼국지 풍년이었다.

# 작가는 다르지만 모든 삼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천하는 합쳐지면 반드시 나눠지고 나눠지면 또 다시 합쳐진다
天下大勢 分久必合 合久必分(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

중국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흥망을 거듭하면서 통일과 분열을 거듭했다.

한반도도 이 공식을 벗어나지 못했다. 고조선에서 나눠진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 통일 신라, 이후 고려, 조선 그리고 남과 북의 분단까지...

각 지역에 살던 이민족들이 로마라는 이름으로 통일했다가 각 나라로 쪼개지고 다시 유럽연합(EU)로 뭉치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인류의 역사 보다 드라마틱한 합체와 분리가 이뤄졌던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기업들이다.

100년도 안된 시간 동안 우리 기업들만큼 거대하고도 촘촘했던 분구필합 합구필분이 진행됐던 곳이 있었을까.

삼성그룹과 CJ그룹, 신세계그룹과 한솔그룹 등이 포진한 범삼성가.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KCC그룹 등이 있는 범현대가.

하나였다가 지금은 분리된 LG와 GS….

초창기 정주영, 이병철과 같은 재계 거인들은 흩어져있던 사업을 뭉쳐 하나의 기업으로 만들었다. 형제에 가족들까지 경영에 참여하면서 삼성가, 현대가처럼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적인 재벌가로 확장됐다. 즉 나눠져 있던 것이 통일된 분구필합의 시기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였던 그룹은 또 다시 여러개의 그룹으로 나눠진다. 거인들이 세상을 떠나며 삼성가는 장남인 이맹희 회장의 CJ, 삼남 이건희 회장의 삼성으로...현대가 역시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부터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등으로 나눴다.

따로 된 이들은 뭉쳐 있을 때보다 몇백배 씩 커졌다.

물론 기업들의 합구필분이 이런 성장을 기대하고 이뤄진 것은 아니다. 경영하는 사람, 즉 자식들과 형제들이 많아지면서 먹고 살 것을 확보하기 위한 성격이 짙었다. 일종의 밥그릇 챙기기다. 무엇보다 골육 간 비극을 최소화시키기 위한 고도의 장치였던 게 아닐는지.

# 롯데라는 큰 틀에서 따로 또 같이, 혹은 같이 또 따로였던 롯데제과와 롯데푸드가 합친다.

이들이 합병하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시장에서 대응하기 위해서다.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의 대한민국. 당연히 과자, 빙과류, 음료 고객도 기하급수적으로 사라진다. 이들 식음료 기업들이 내수 시장만을 믿고 사업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 밖으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바다 너머에는 거대 식음료 회사들이 즐비하다. 이들이 갖고 있는 내공과 역사도 만만찮다. 골리앗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신체와 체력이 필수다. 어제는 싸웠을지라도 오늘은 또 다른 적을 위해 친구는 물론 원수와도 손을 잡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월동주! 합종연횡! 십시일반! 이이제이!

이 같은 전략이 제대로 작용할 경우 적은 비용과 물량으로도 거대 기업들과 대등하게 맞설 수 있게 된다. 반면 단점이 커질 경우 입을 수 있는 치명상도 만만찮다. 두 기업이 동시에 나락으로 가라앉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앞으로는 생존을 위한 분구필합이 필수가 될 것이다. 침몰하는 배 안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은가. 당장 이 순간부터 기업들이 다시 뭉칠 수 있다.

혼자 살아남기에 이 세상은 너무나 거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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