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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국연방은 온전할까

[칼럼] 영국연방은 온전할까

기사승인 2022. 10. 17.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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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이경욱
호주 시드니에서 근무했을 때의 경험이다. 잊힐 만하면 등장하는 이슈가 바로 '영국연방 탈퇴'였다. 영국 왕실 인사가 호주를 방문한다고 하면 어김없이 여론조사가 실시됐다. 언론은 앞을 다퉈 영연방 탈퇴 주제의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여론조사는 대부분 호주인 상당수가 영연방에서 탈퇴해도 좋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그래서 몇몇 호주 지인들에게 영연방에 대해 물어봤던 기억이 새롭다. 대부분 "관심 없다"는 반응이었다. 영연방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는 어렴풋이 알고는 있지만,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고들 했다. 학교에서 영연방에 대해 공부를 했어도 거기까지였다는 것이다. 다들 생업이 바빠서 그랬는지 무관심 일변도였던 것 같다.

여전히 논란이 있고 개인적으로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호주는 영국 죄수들이 세운 나라라는 냉혹한 평가를 듣는다. 일부는 죄수를 호송하고 온 영국의 엘리트 공무원들이 나라의 기초를 다졌다고 맞서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호주와 영국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다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호주인 사이에서 영국의 존재는 기억 속에서 희미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단체가 2009년 호주를 비롯해 캐나다·영국·인도 등 영연방 7개국 국민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호주인 가운데 75%는 영연방에서 탈퇴하더라도 "미안할 게 없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는 "영연방에서 탈퇴하면 매우 기쁠 것"이라고까지 했다. 놀라운 것은 호주인 대부분이 영연방의 기능과 역할, 탄생 배경 등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현재 영연방에 속한 54개국 가운데 영국 군주를 국가원수로 삼고 있는 나라는 호주·캐나다·뉴질랜드·자메이카 등 15개국이다.

그로부터 13년이 흘러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 서거를 계기로 영연방의 탈퇴 등을 놓고 많은 얘기가 오가고 있다. 그동안 연방을 지탱해 온 힘의 원천이 여왕 개인의 권위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고 보면 그의 서거 이후 영연방 국가 사이에 심각한 균열이 생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영국 국영 BBC는 "이는 여왕의 빈자리를 메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호주에서는 부결되기는 했지만, 1999년 군주제 폐지 찬반 투표가 실시된 적이 있다.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호주와 캐나다가 영연방 탈퇴에 가장 적극적이다. 호주 제 1야당 노동당에서는 "호주의 국가원수는 영국 왕이 아니라 호주인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영국 왕이 '상징적 국가원수'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반을 넘고 있다. 영국 내부에서도 군주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거로 국가원수를 선출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연방 체제는 여전히 굳건하다는 점이다.

영국 여왕의 장례식에는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장례 모습은 지면과 방송, 모바일 등 매체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전파됐다. 영국은 엄숙하게 장례를 치렀다. 하지만 개인 중심의 포스트모더니즘이 굳게 뿌리내리고 있고, MZ세대가 사회의 주류를 형성해 가고 있는 요즘 영국의 군주제가 언제까지 호응을 얻을 수 있을까. 카밀라 왕세자빈과의 몇십년에 걸친 불륜,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 등으로 윌리엄 왕세손 부부에 대한 영국 내 호감도가 45%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영국인은 물론이고 영연방 국민, 그리고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다른 나라 국민들조차 언제까지 형해화(形骸化)한 군주제와 왕실에 대해 너그러운 마음을 계속 지닐 수 있을까. 아무리 연방국 여왕 장례식이라고 하지만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한 게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는 지구촌의 숱한 빈곤층에 언제까지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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