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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칼럼]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기사승인 2022. 10. 31.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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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이경욱
처음 핼러윈을 만난 것은 20여 년 전이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가 핼러윈 관련 그림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받았다고 했다. 여기저기 알아보다 큰 호박 덩어리에 군데군데 구멍을 낸 핼러윈 호박의 괴기스러운 모습을 그때 난생 처음 봤다. 직접 만들어 보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였다. 오다가다 곳곳에 쌓여 있는 커다란 호박 덩어리들과 가게 앞에 내걸린 각종 핼러윈 의상, 장난감들과 수시로 마주쳤다.

어느 날 아이는 몇몇 아이들과 핼러윈 복장을 하고 곳곳을 돌아다녔다. 알지도 못하는 집 현관문을 두드리면서 "Treat or Trick"이라고 외쳤다. "사탕 주면 마법에 걸리지 않게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집 주인은 문을 열고 사탕을 건넸다. 무시하는 집들도 더러 있었다. 뒤따라 다니면서 머쓱해할 수밖에 없었다. 잊고 지냈던 핼러윈을 지난해 말 다시 만났다. 아파트 주민 수백 명이 핼러윈 데이를 기념한다며 단지 한복판에 모였다가 흩어져 곳곳을 휘젓고 다녔다. 산책길에서 갑자기 검은 색 옷차림에 복면을 한 성인이 얼굴을 들이밀어 깜짝 놀라기도 했다. 핼러윈 복장 차림을 한 아이들은 도어록 비밀번호를 알아야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만 마냥 즐거워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하니 그냥 지나쳤다. '볼썽 사나운 복장을 한 아이들이나 성인들이 핼러윈의 유래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푸념하며 외면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난 10월 30일 일요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매체를 통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핼러윈을 또 만났다. 새벽녘 잠에서 깨어나 '참사' 소식을 영상으로 접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려 154명이나 되는 우리의 10대와 20대 젊은이와 외국인은 핼러윈 '폭풍'에 순식간에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핼러윈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라 이태원 참사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충격 그 자체였다.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어처구니없는 안전사고였다. 쓰나미나 지진도 아니고 그렇게 많은 인명이 눈 깜짝할 사이 세상을 떠날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그것도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라니.

좁은 골목 비탈진 길에 뒤엉켜 있던 사람들은 주로 핼러윈 복장을 하고 있었다. 참사 현장에 남은 굽 높은 뾰족 구두와 운동화는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에 공권력의 존재는 잘 보이지 않았다. 숱한 젊은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참사의 현장에는 의료의 손길이 절실해 보였다. 구급차 침대에 올라탄 채 심폐소생술에 최선을 다한 의료진의 노력도 허사였다. 정부가 부랴부랴 대응하고 나섰지만 때는 지났을 뿐이었다. 국민 모두가 허탈하고도 비통한 심정으로 그날을 보냈을 것이다. 누구의 잘잘못과 핼러윈의 존재 등에 대해 따질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그냥 젊은이들의 죽음을 놓고 허망해할 뿐이었다.

참사 이튿날 오후 늦게 아파트 주차장에서 승합차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을 봤다. 핼러윈 복장 차람이었다. 부모로 보이는 성인들은 아이들 챙기기에 정신없었다. 병원으로 이송된 젊은이들이 숨져가고 있었던 때였다. 아직 참사 소식을 접하지 못했나 싶었다. 멀찌감치 그 모습을 보고서는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지자체나 기업들이 앞을 다퉈 핼러윈 행사를 취소했다. 정부는 애도기간을 설정했다. 검은색 리본을 달았다. 서울시청 앞 광장에는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 월요일 출근길 지하철 안 직장인들은 모바일을 통해 콘텐츠를 보며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하는 모습이었다. 이태원 참사는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억하기조차 싫은 일로 오래오래 남게 됐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하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감만 잔뜩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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