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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빠른 해결보다 균형잡힌 대안 찾아야

[칼럼] 빠른 해결보다 균형잡힌 대안 찾아야

기사승인 2023. 01. 2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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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조희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얼마 전 국제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서울과학고 학생들을 만났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혹시 건의사항이 있느냐'고 했더니 뜻밖에도 올림피아드 수상 결과를 학생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게 해달라는 건의를 받았다. 올림피아드 준비와 대학입시 준비를 따로 해야 하는 부담을 호소했다. 국제올림피아드 수상이 수시나 수능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학생이 원하는 대학의 수학 관련 학과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학생 생활기록부에 올림피아드 수상 결과를 기록할 수 있었지만 이와 관련한 사교육이 과열되는 등 부작용이 심해지자, 올림피아드처럼 학교 밖에서 받은 상은 아예 학생 생활기록부에 적지 못하게 했다.

나는 지금 올림피아드 수상 결과를 다시 학생 생활기록부에 반영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올림피아드 수상이 생기부에 반영되던 시절의 부작용에 대한 기억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피아드 수상기록을 허용하게 되면 한국의 일부 학부모들은 국제올림피아드와 같은 수준의 대회를 수십개 만들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웃픈 농담이 우리의 또다른 현실을 말해준다.

다만 우리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의 한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이를 환기하면서, '균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함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한 가지 문제가 터지면 한동안 온 나라가 그 이야기만 한다.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서는 최대한 강력한 대책을 만들어내라는 요구가 빗발친다. 이때부터는 '속도전'이다. 대책을 내놓는 속도가 느리면, 안일하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심사숙고할 여유가 없다. 어떤 일탈 사안에 대한 규제 조치가 다른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설령 누군가가 이런 지적을 해도, 더 빠르고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파묻히기 쉽다.

하지만 빠르게 달아올랐던 여론이 금세 식어버리는 것도 우리 사회의 특징이다. 속도전 치르듯 급히 만들어낸 대책이 시행될 때쯤이면 애초 그 대책을 요구했던 목소리는 잠잠해져 있다. 대신 예상치 못했던 피해자나 부작용이 나타날 때가 있다.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은 올림피아드 수상 학생이 국내 대학의 관련 학과에 진학하지 못할 수도 있는 모순이 바로 이런 예상못한 피해사례의 하나다.

한국은 여러 지표에서 이미 선진국이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던 시절은 지나갔다. 빠른 속도는 이제 미덕이 아니다. 제도 설계에선 더욱 그렇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조율하고,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끔 해야 한다. 제도 설계가 '속도'에만 내몰리면, 규제 범위를 최대화하는 쪽으로 이뤄지기 쉽다. 그런데 선진국에 가까워질수록, 사회 문제는 복잡해지기 마련이다. 한국 사회의 문제 역시 단순방정식이 아닌 복합방정식으로 풀어야 한다. 최대 규제는 이 같은 문제를 다루기에는 부적절할 때가 많다.

하나의 가치를 최대주의적으로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개의 좋은 가치 간의 균형과 적절한 배합을 생각해야 할 때가 됐다. 지금처럼 좋은 가치들이 서로 충돌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제 우리는 절대후진국을 벗어난 우리 사회의 조건과 쟁점이 되는 문제들의 복잡성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차분하게 균형잡힌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에 들끊는 마음으로 빠르게만 해결하려다보면 때로는 한쪽 방향으로 너무 멀리 가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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