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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근로자의 노후 대비 종잣돈에 손 대면 연금개혁이 아니다

[칼럼]근로자의 노후 대비 종잣돈에 손 대면 연금개혁이 아니다

기사승인 2023. 01. 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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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현 상명대 교수
김재현 상명대학교 글로벌금융학부 교수(前 한국연금학회장)
최근 국민연금 학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퇴직금으로 적립되는 월급의 일부를 국민연금으로 돌리는 '보험료 전환제 도입'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 도입 초기에 기업부담을 우려해 회사가 퇴직금으로 적립하는 준비금 중 표준보수 월액의 2%(1998년 이후 3%)를 국민연금에 납부할 경우, 해당 금액을 퇴직금에서 미리 지급한 것으로 간주했던 제도(1993~1999년)를 부활하자는 것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한번에 인상하기 어려우니 퇴직금 중 일부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일부 돌리자는 방안이다. 이렇게 되면 퇴직연금 부담금 8.33% 중 4%를 떼어 국민연금보험료를 인상하므로 연금개혁이 필요한 국민연금은 손 안 대고 코를 푸는 셈이고, 기업은 연금개혁을 비껴가며 퇴직연금 관리부담까지 줄게 되어 반길 것이다.

88 올림픽 때 고안했던 제도를 연금개혁이란 이름 아래 부활시켜 근로자의 노후 대비 종잣돈에 손을 대려면 정말 신중해야 한다. 퇴직연금으로 국민연금을 메꾸자는 생각이 하석상대(下石上臺)란 비판 이외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점을 갖는지를 살펴보자.

첫째, 퇴직금이나 퇴직연금이 후불임금의 성격을 지닌다는 판례가 있는 만큼, 그 일부를 국민연금으로 전환하면 근로자의 권리가 침해된다. 또한 기업의 입장만 고려한 오해도 살 수 있다. 30여 년 전 노측이 퇴직금 전환금에 합의한 까닭은 당시 장부에만 적혀있는 퇴직금을 소득대체율 70%로 설정된 국민연금에 넣는 것이 결코 밑지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퇴직연금은 사외 적립돼 기업 파산으로부터 보호되며,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두 차례 조정을 거쳐 2028년 40%까지 축소 중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으로 돌릴 유인은 사라졌다. 특히 개별 근로자가 적립금 운용방법을 결정하는 확정기여형(DC)의 경우, 전환제도가 도입되면 400만 근로자의 계좌로 이체되는 기업 부담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과거는 어땠는지 몰라도 이제는 헌법소원 감이다.

둘째, 근로자의 수급권에 득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소득재분배 기능을 지닌 국민연금에 퇴직연금이 들어가면 많은 근로자는 자신의 몫을 저소득층을 위한 연금재원으로 쓰이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국민연금 수익비(받을 돈÷낸 돈)가 높게 보이지만, 저부담 고급여라는 무리한 설계에 따른 것이므로 연금개혁의 대상이다. 한편 퇴직연금 전환금으로 고령화로 인한 국민연금 재정고갈 위험을 해결할 수도 없다. 따라서 퇴직연금 전환제도는 불공평과 미봉책이란 점에서 특히 젊은 세대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셋째, 퇴직연금을 국가 노후소득보장의 근간으로 키우려는 백년대계가 새싹부터 꺾인다. 퇴직연금은 도입된 지 20년이 채 못되었지만 700만명 넘는 근로자가 가입했고 적립금 350조원 규모로 빠르게 성장 중이다. 정부도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디폴트 옵션과 같은 안정된 장기수익률 기반을 마련하였고, 퇴직연금 일원화나 기금형 도입 등 제도 선진화 로드맵을 추진 중이다. 이 와중에 근로자가 자조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퇴직연금을 제쳐놓고 멍하니 국민연금만 바라보게 하겠다면 시대에 뒤처진 국민연금 지상주의가 아니겠는가. 이는 시장 자율을 중시하는 정부의 국정 방향과도 거리가 멀다.

앞서 연금개혁을 단행한 서구는 공적연금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부족분을 사적연금의 활성화로 메웠고, 기초연금을 강화하고 사적연금의 규제 감독을 정비해 전체 연금시스템을 공고히 하고 있다. 연금개혁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에 이르는 여러 연금제도의 역할 비중을 조정하면서 각각의 완성도를 높이는 정치다. 굳이 연금개혁을 정치라고 부르는 이유는 계층과 세대 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오랜 소통과 조정과정이 필요한 국가 과제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퇴직연금의 국민연금 전환은 시간에 쫓긴 미봉책이자 편의주의로서 연금개혁의 수단이 되기 어렵다.

김재현 상명대학교 글로벌금융학부 교수(前 한국연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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