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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의 아리랑] <31> 전란 속에 피어난 서정 ‘삼다도 소식’

[대중가요의 아리랑] <31> 전란 속에 피어난 서정 ‘삼다도 소식’

기사승인 2023. 03. 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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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래 객원논설위원
'삼다도라 제주에는 아가씨도 많은데/ 바닷물에 씻은 살결 옥같이 귀엽구나/ 미역을 따오리까 소라를 딸까/ 비바리 하소연이 물결 속에 꺼져가네/ 음~~ 물결에 꺼져가네//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멩이도 많은데/ 발뿌리에 걷어채는 사랑은 없다드냐/ 달빛이 새어드는 연자방앗간/ 밤새워 들려오는 콧노래가 구성지다/ 응~~ 콧노래 구성지다' '삼다도 소식'은 제주에서 탄생한 대표적인 유행가이다.

그것도 총성이 진동하고 포연이 자욱하던 6·25 전쟁기에 나온 노래이다. 그런데도 '삼다도 소식'에는 포탄 소리나 화약 냄새가 전혀 없다. 전쟁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노랫말과 멜로디가 출렁거린다. 전쟁가요는 전란의 참상과 애환을 대중과 공감하며 지친 심신을 위로하고 재생의 의지를 복돋우기 마련이다. 하지만 때로는 생사의 갈림길인 전쟁터도 관조하듯 서정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전쟁 중에도 대중들의 삶은 지속되기 때문이다. 헤밍웨이 장편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의 내용처럼 전쟁 속에서도 사랑의 꽃이 피어나기도 하는 것이다. '삼다도 소식'은 바람과 돌과 비바리가 많은 삼다(三多)의 고장 제주도의 서남쪽 끝 모슬포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는 소속 음악인들이 만든 노래이다. 제1훈련소 1·4 후퇴로 다시 전세가 밀리던 국군이 긴급하게 마련한 신병양성소였다.

임시 수도를 부산으로 옮겼을 정도로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신병 훈련의 최후 거점은 제주도였다. 1951년 1월부터 1956년 4월까지 5년 동안 50만여 명의 장병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았다. 훈련소에는 전속악단인 군예대(軍藝隊)도 창설되었다. 작사가 유호, 작곡가 박시춘, 가수 남인수·황금심·금사향·고화성, 코미디언 구봉서 등 연예인들이 주축이었다. 그들은 군번 없는 용사들이었다.

군예대원들의 전쟁은 사선을 넘나드는 장병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고 고향 잃은 피란민들을 위로해 주는 연예활동이었다. 군예대원들은 '먹물도장' 즉 '위문공연 중 목숨을 잃더라도 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활동에 나섰다. 총탄이 날아오는 전장에서도 공연활동을 펼치며 웃음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은 군인과 국민의 마음을 지키는 '총 들지 않은 용사들'이었다.

당시 작사가 유호가 모슬포 바다에서 떠오른 가사를 짓고 군예대장이던 작곡가 박시춘이 가락을 실어 황금심의 구슬픈 목소리로 띄운 게 '삼다도 소식'이다. 금사향의 '임 계신 전선'도 군예대 활동 당시 지은 가요이다. 노래를 취입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부산까지 10시간 배를 타고 와서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 녹음을 했다고 한다. 오리엔트레코드사 소속 가수 고화성도 군예대원이었다.

2000년 6·25전쟁 50주년 특집기사를 쓰던 시절 그분을 만난 적이 있다. '38선 야화' '꽃 피는 진주 땅'을 취입해 인기몰이를 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제주도로 가서 종군가수가 되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고운 여인을 만나 가정도 이루었다고 했다. 남인수·금사향 등과 찍은 흑백 사진을 들고, 히트곡 하나 없었던 가수로서의 지난 삶을 물기 어린 눈으로 되돌아보던 인정 많던 노가수 고화성을 잊을 수 없다.

전쟁 속에도 서민의 삶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해변의 바람소리 해녀의 숨비소리 아련한 '삼다도 소식' 한 곡으로 전쟁의 시름을 달랬다. 누가 이 미려하고 애틋한 가락을 전쟁 속의 서정이라 탓하겠는가. '알뜰한 당신'의 주인공인 '꾀꼬리의 여왕' 황금심이 모슬포를 배경으로 부른 '삼다도 소식'은 참혹한 전란의 와중에서 피워올린 연꽃 같던 절창이었다. 종군가수들의 삶도 그랬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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