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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칼럼] 뱅크-런, 과거 아닌 현재의 문제

[김이석 칼럼] 뱅크-런, 과거 아닌 현재의 문제

기사승인 2023. 03. 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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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논설심의실장)
논설심의실장
미국에서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이 벌어져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들과만 거래하는 40년 역사의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했다. SVB의 파산은 뱅크-런이 금융이 이미 해결된 과거에만 있었던 문제가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문제임을 보여준다.

스타트업들의 돈줄 역할을 하던 SVB의 파산과정은 다음 두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첫 번째 교훈은 '경기부양을 위해 뭉칫돈을 풀었다가 고물가가 우려되어 돈줄을 다시 죄는 정책'이 SVB의 파산과 같은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 교훈은 '요구불예금과 부분지급준비제도가 서로 조화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제시된 대안적인 방안을 간략히 소개할 것이다.

코로나 대유행 기간 미국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뭉칫돈을 풀자 이 은행도 호황을 누렸다. 기술 관련 스타트업과 암호화폐 등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스타트업들의 이 은행으로의 예금도 크게 늘었다. 풍부해진 운용자금으로 SVC는 비록 금리는 제로 수준이지만 안전자산이라는 미국 국채를 대거 사들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3월부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고물가를 잡는다면서 기준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높은 이자율은 기술 스타트업들이 어려워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김이석, "돈 풀기-죄기 속에 등장한 '회색코뿔소'" 아시아투데이, 2022.1.24. 참고) 유동성 위기를 맞은 스타트업들은 SVB에 예치한 예금을 인출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은행은 보유 현금이 모자랄 위험에 처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은행은 보유하던 국채와 모기지증권 등을 80% 팔아치웠지만 이자율 급등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져 세후 18억 달러 손실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보유채권의 매각으로도 자금이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 처하자 SVB는 신주발행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이 은행의 재무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고 주요 고객인 스타트업들과 벤처자본가들의 SVB로의 뱅크-런을 불렀다. 이 은행은 주로 벤처캐피털 투자를 받은 기술 스타트업의 예금을 유치해서 다시 이 자금을 다른 스타트업에 대출해 주는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그런데 이 방식은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통했지만, 연준이 돈줄을 죄면서 틀어지고 말았다. 현재 SVB의 파산이 전반적인 금융위기로 확대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은 연준의 돈줄 풀었다-죄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보여준다.

다음으로 요구불예금과 부분지급준비제도의 부조화 문제다. 부분지급준비제도 아래에서 은행은 이자를 주면서 예금을 유치한 후 이 예금에 대해 100%가 아닌 일부만(통상 5%보다 낮은 수준) 지급준비로 보유하고 나머지는 다시 조금 더 높은 이자율로 빌려준다. 그런데 뱅크-런으로 실제 예금인출 요구가 이 기준을 넘어서면 은행은 파산한다.

이를 해결할 하나의 방법은 아예 은행이 신용창출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100% 지불준비다. 언제든 인출 가능한 요구불예금은 은행이 오히려 보관비를 받는다. 또 저축예금은 사전에 계약한 예치기간에 따라 이자를 지불하고 이 예치기간에 맞게 대출기간을 정해 조금 더 높은 대출이자율을 받는다. 은행은 그렇게 해서 만기불일치에 따른 파산의 위험을 피하면서 금융 중개(financial intermediation) 영업을 한다.

또 다른 방법은 부분지급준비제도를 유지하되 고객이 예금을 인출하려고 할 때 예금 중 일부만 인출할 수 있게 하는 등 제한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제약의 부과로 고객이 은행에 맡긴 돈은 '언제든 원하면 찾아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은행에 '대출한 돈'의 성격을 띤다. 100% 지급준비는 과격한 변화일 테지만, 은행의 과도한 신용창출에 따른 '인위적 경기변동'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장점이 있다. 이에 비해 은행 예금의 인출에 제약을 가하는 방안은 뱅크-런에 따른 은행의 파산가능성을 줄이면서 과격한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이 분야 전문가와 한은의 이 부분에 대한 연구와 정책의 제안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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