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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환 칼럼] 봄, 황사 그리고 ‘火生土’

[오응환 칼럼] 봄, 황사 그리고 ‘火生土’

기사승인 2023. 05. 0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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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응환 객원논설위원
오응환
오응환 객원논설위원
봄이다. 봄은 흙이 주인공이다. 겨우내 얼었던 흙을 뚫고 나온 파란 싹들과 울긋불긋 꽃들이 잔치를 벌인다. 이런 산과 들의 모습만 보아도 새 기운이 솟는다. 그런데 걱정도 크다. 긴 가뭄이 이어져 건조주의보가 내려진 상황에서 지난 3월 8일 충남부여의 산불, 11일 경남 하동 산불과 4월 11일 강릉의 대화재 소식 탓이다.

문득 어쭙잖은 지식 하나가 떠오른다. 오행(五行)의 상생(相生)법에서는 '화생토'(火生土) 라고 했다. 즉 불이 흙을 살린다는 것이다. 불과 흙은 서로 사이가 좋아서 불이 난 후 남은 재는 흙으로 변한다고 했다. 식물이 자라는 목적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이어서 꽃(土)을 피우면 성장을 멈추고 양분을 꽃에 보내니 '화생토'(火生土) 이다. 또한 불(火)이 나면 무엇이 타고 재가 남아 흙(土)으로 변하기도 하니 이것 역시 '화생토'(火生土)라 했다. 결국 불은 흙을 살린다는 이야긴데 요즘 불들은 도저히 흙을 살릴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불이 나고 재가 남은 곳에서 흙이 생명의 기운으로 변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가늠할 수 없어 걱정이다.

청하지 않는 황사와 미세먼지가 끝도 없이 날아오고 있다.

황사는 미세한 모래먼지가 하늘 높이 올라가 대기 중에 퍼져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떨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나라를 괴롭히는 황사는 주로 중국과 몽골 황토지대에서 편서풍을 타고 날아온다. 황사가 우리나라에 날아온 것은 오래됐다. 황사란 용어는 일제 강점기부터 쓴 말이고 신라 시대의 아달라왕 21년(서기 174년)에 '우토(雨土)'라는 기록으로 처음 등장한다. 조선 시대는 '토우(土雨)' 즉, 흙비라 불렀다. 중국발 황사인데 실제로 황사의 피해를 가장 많이 겪는 나라가 중국이라니 욕할 대상이 없어지는 것 같아 더 답답해진다.

황사로 인한 피해는 엄청나다. 우리나라에서는 황사로 인해 한해 최대 200만명 이상 병원 치료를 받고 200명이 죽는데 이런 유형무형의 피해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면 한해 최대 8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한국 환경정책평가연구원. 2005년) 최근의 조사된 자료가 없으나 현재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미세먼지는 무엇일까. 미세먼지의 역사는 짧지만, 그 영향은 강력하다. 미세먼지는 아황산가스, 질소산화물, 납, 오존, 일산화탄소 등과 함께 수많은 대기오염물질을 포함하는 물질인데 최근 우리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공장, 가정 등에서 사용하는 화석 연료로 인해 발생한다니 세계의 공장 중국에만 책임을 미룰 수는 없다. 그렇지만 자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이 떠오른다. 당시 베이징의 대기오염도가 너무 높아서 참가선수들이 야외 경기 보이콧을 하려 할 정도였다. 베이징 대기오염의 주범은 중국 전역의 석탄 사용 시설물과 공장들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정말 걱정이다. 2014년 국내에서 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인터스텔라'가 다시 떠오른다. 영화 속 인류의 터전 지구에는 미친 듯이 흙 돌풍이 불어대고, 대지는 생명을 잉태할 수 없는 먼지로 바뀌었으며 모든 농작물은 멸종 직전이다. 유일하게 경작이 가능한 농작물인 옥수수가 실험실에서 시들어 간다. 야구 경기를 즐기다가 몰려오는 흙바람을 피해 살기 위해 모두 집으로 황급히 돌아가던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생명을 키울 수 없었던 그 흙이 바로 중금속 품은 황사와 미세먼지라고 필자는 확신한다. 씨앗이 날아와 앉기만 해도 쉽게 생명을 키워내던 기름진 흙이 인류의 학대에 견디다 못해 역습을 시작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가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구 말고 인류가 살 수 있는 행성을 찾아내는 것으로 나온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처럼 블랙홀과 웜홀을 여행할 수도 없고 5차원과 3차원을 오가며 자손을 위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 낼 수도 없다. 영화 속 이야기니 다행이라 여기기만 할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흙의 역습을 되도록 지연시키고 원형을 잃어가는 흙을 최선을 다해 지켜야한다. 

필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오행(五行)의 '화생토(火生土)'가 현재 자연계에서는 더 이상 '화생토(火生土)'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럴 시간적 여유나 인간의 노력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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