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이경욱 칼럼] ‘300,000,000,000’

[이경욱 칼럼] ‘300,000,000,000’

기사승인 2023. 05. 16. 17:3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이경욱 대기자
3000억 원. 이는 남태평양 작은 도서국들의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엄청난 돈이다. 현대자동차의 쏘나타 1대 당 가격이 3천만 원쯤 되니 쏘나타 1만 대를 살 수 있는 천문학적 수치의 돈이기도 하다. 이 돈을 벌려면 도대체 쏘나타를 몇 대를 팔아야 할까.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2억 원 정도니 이 돈으로 250채의 아파트를 살 수 있다.

이자율을 연 3%로 잡는다면 이 돈에서 나오는 이자는 연 90억 원이고 한 달에는 7억 원이 넘는 돈을 이자로 받을 수 있다. 웬만한 근로자의 연봉에 가까운 2500만 원을 매일 받을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평범한 사람이라면 감히 머릿속에 그려볼 수도 없는 금액이다.

최근 만난 고교 동창생이 종이 쇼핑백에 가득 뭘 담아갖고 왔다. 궁금해서 물어봤더니 쇼핑백 안에 비닐로 깔끔하게 포장된 달러 다발을 꺼내 보여줬다. 한화로 환전하기 위한 거란다. 그게 10만 달러였다. 들어보니 묵직했다. 우리 돈으로 1억2000만원이라고 한다면 3000억 원은 중장비가 있어야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이 돈을 지금 지구상에서 열심히 일하는 직장인들 가운데 한 명이 받았다면 믿겨질까. 이 돈의 주인공은 순다르 피차이 구글 및 모회사 알파벳의 최고경영자(CEO)다. 올해 50세인 그는 3년마다 받는 거액의 주식 보너스 덕에 지난해 연봉으로 모두 2억2600만 달러(약 3000억 원)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의 급여 가운데 주식 보너스가 2억1800만 달러(2904억 원)였다. 기본 급여는 200만 달러(27억 원)였다. 기본 급여만 놓고 본다면 이제 우리나라 대기업 CEO들도 받는 수준이니 그리 놀랄 정도는 아닐지 모른다. 

어쨌든 당장은 아니겠지만 그는 언젠가 주식을 팔아서 현금화하겠기에 그가 받는 급여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리고 그가 언제까지 재직할지는 알 수 없지만 수년간 더 재직한다고 하면 그가 직장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받는 돈은 역사의 기록에 남지 않을까.

이런 피차이의 연봉은 고액 연봉자 집단인 알파벳의 직원 평균 연봉 27만9천802달러(3억7천270만원)의 800배를 넘는다고 한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은 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임원이 되는 것을 아예 포기한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되기도 힘들지만, 밤낮을 쉬지 않고 일하고 이런저런 관계에 매달려야 하는 그런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다.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한 나라의 근간이 되는 젊은층 직장인들이 가족과 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 계발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려는 생각은 옳다. 여기에 자신의 연봉에 비해 수십, 수백 배를 더 받는 피차이 같은 임원들의 사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더 확고히 다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피차이 사례를 두고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명예세'를 부과하면 어떨까. 자신이 수백억, 수천억을 벌 수 있는 뛰어난 인물이라는 것을 세상이 다 알게 되는 명예를 얻었으니, 번 돈의 대부분을 자발적으로 사회에 되돌려 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임금에 대해 50%의 안팎의 소득세를 부과하고 있으니 피차이가 손에 넣는 돈은 절반이 좀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구간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직장인들이나 연예인, 사업가들에게 지금의 소득세에 추가로 명예세를 부과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요즘 기업들이 CEO 등에 엄청난 규모의 급여를 주고 있고 그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논란이 있겠지만 돈보다 명예를 더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된다면 얼마든지 도입을 고려해 볼 만한 사안 아닐까.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