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 쪽방촌 온기창고 가보니 영업 시작 30분 전부터 인파 모여 관계자 "후원 물품으로 운영" 해명
온기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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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10시께 서울역쪽방상담소 동행스토어 온기창고 일대. 온기창고 오픈 시간에 맞춰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김형준 기자
"없는 것보다는 좋은데 기대에는 못미치네요."
25일 오전 9시 38분께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골목 일대. 좁을 골목길에 노인들이 조금씩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긴 줄을 형성했다. 저마다 손수레나 장바구니를 들고 있던 이들은 서울시와 서울역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온기창고'를 이용하기 위해 온 손님들이었다.
지난 8월 첫 영업을 시작한 온기창고는 기초생활수급가구를 위한 상점으로 쪽방촌 주민이 생필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든 상점이다. 서울역쪽방상담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등록된 온기창고 이용객은 944명으로 하루 이용객은 200명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2만5000원씩 월 10만원 규모의 포인트를 받아 이곳에서 장을 볼 수 있다.
그동안 지자체의 물품 배급 지원만을 기다리던 기초생활수급자의 자존감을 높이고 장보기의 즐거움도 선사한다는 취지였지만, 이날 방문한 현장은 다소 썰렁한 분위기였다. 제품 종류에 대한 아쉬움 등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5년째 쪽방촌에서 거주하고 있는 70대 남성 A씨는 "(온기창고가 생긴 지) 두 달 정도 지났는데 딱히 생활에 달라진 점이 없다"며 "음식도 먹을 만한 것을 갖다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다. 그래도 주니까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80대 여성 B씨는 "휴지도 하나씩만 가져갈 수 있게 하고 마땅히 살 물건이 없다"라고 설명했다. 빈손으로 상점을 나온 60대 남성 C씨도 "형식적으로 만들어 뒀지만 특별한 것이 없다"고 불평을 털어놨다.
온기창고 내부에는 된장·고추장·참기름 등 조미료와 함께 각종 과자와 아이스크림, 팩으로 된 곰탕 등이 놓여 있었다. 빵류나 냉동식품 등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품이 없는 것은 물론 오후가 되자 일부 진열대가 빈 공간으로 남겨지기도 했다.
서울역쪽방상담소 관계자는 "현재 물품을 저희 측에서 사서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세븐일레븐 등에서 후원이 들어온 물품을 쌓아놓고 주민들이 선택하는 방식"이라며 "솔직히 전체 주민들이 만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명했다.
인근 사랑방을 오가고 있는 D씨는 "처음 온기창고가 생길 때만 해도 어르신들이 기대를 많이 하셨지만 그만큼 실망도 큰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일회성 지원이 아닌 노인들의 실질적인 자립을 돕기 위한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송이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온기창고에 대해) 안 하는 것보다는 좋지만 일회성 지원으로 노인들의 힘든 생활을 끊을 수 있게 하기는 힘들다"며 "가족이나 다른 사회적 지지가 충분히 있는 분들이 아닌 기본적으로 삶의 소외가 있는 분들에게 맞는 적정 수준의 복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