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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칼럼] 한국군 군사적 천재, 채명신 장군을 회고하며

[이기성 칼럼] 한국군 군사적 천재, 채명신 장군을 회고하며

기사승인 2023. 11. 02.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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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성 전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11월 25일은 '나를 파월장병 묘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영면하신 채명신 장군의 10주기가 되는 날이다. 고인의 뜻에 따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제2사병묘역(묘비 24489번)에 안장된 장군님은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의 영웅이자 온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참군인의 표상으로 추앙받고 있다.

채명신 장군은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제주 4·3사건을 진압한 제9연대의 소대장으로 부임하면서 소규모 유격전 및 게릴라전을 경험하였다. 6·25전쟁 시에는 송악산과 태백산지구 전투에 참전하였고, 유격대인 백골병단장으로서 북한군으로 위장하여 후방에 침투하여 적진을 교란하는 게릴라전을 수행하였다.

베트남전에서는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서 탁월한 혜안과 결단력으로 주월한국군의 독자적 작전권을 확보하고, 한국군의 새로운 군사교리를 창출하여 1964년 9월 23일부터 1973년 3월 23일까지 8년 6개월 동안의 베트남전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며 한국군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떨쳤다. 이러한 채명신 장군은 참군인이자 한국군에서 보기 드문 군사적 천재로 추앙받을 만하다.

고대 프로이센 왕국의 군인이자 군사사상가인 클라우제비츠는 그의 저서 「전쟁론」에서 전쟁의 본질은 국민의 감성, 군대와 지휘관의 우연성과 개연성, 정부의 이성이 함께하며, 전쟁은 언제나 위험성, 불확실성과 우연성이라는 마찰이 상존한다고 주장하였다. 전승을 위해서는 이러한 난관을 극복하는 것이 군사적 천재의 역할이며 군사적 천재에게 가장 필요한 요소로 혜안(Coup d'oeil)과 결단력을 제시하였다.

우리나라에서 군사적 천재를 논하자면 임진왜란 시 이순신 장군, 6·25전쟁에서 백선엽 장군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채명신 장군 10주기를 맞이하면서 클라우제비츠가 제시한 혜안과 결단력을 갖고 베트남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한 명장 채명신 장군 또한 한국군의 훌륭한 군사적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전에 대한 혜안으로 한국군이 미군과 파병을 위한 최초 협상단계에서부터 독자적인 작전권을 집요하게 주장하였다. 한국군은 미국의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 월남을 공산주의 침략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독자적인 작전통제권을 확보하였다.

작전통제권을 확보한 채명신 장군은 베트남전에서 적용할 새로운 작전개념을 연구하였다. 채명신 장군은 6·25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베트남의 작전환경과 베트공의 전략·전술을 분석하여 미군의 비정규전 교리와는 다른 새로운 대게릴라전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1965년 10월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 당시 미군의 작전개념은 '수색 및 격멸(search & destroy)' 개념에 따라 은거가 예상되는 지역을 탐색하여 이들을 찾아낸 후 강력한 군사력을 투입하는 방식의 작전이었다. 반면에 채명신 장군은 게릴라전의 속성을 감안할 때 강력한 군사력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는 베트남전에서 효과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분리-섬멸-지역확대'의 작전개념을 구상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으로 중대전술기지전술을 발전시켰다.

중대전술기지는 주민들의 거주지역 외곽에 전술기지(tactical base)를 설치하고, 베트콩과 주민을 분리시켜 게릴라의 온상을 파괴하고 베트콩의 활동 범위를 축소시킨 후에 고립되고 약화된 적을 상대적으로 우세한 병력과 화력을 투입하여 격멸하는 개념이었다. 한국군은 가용병력이 제한되었기 때문에 광범위한 책임지역에서 핵심지역을 선정하여 중대 단위로 전술기지를 편성하였다. 중대전술기지는 아군의 화력으로 보호받고 유개화된 요새진지를 구축하여 적 연대 규모의 공격에도 48시간 이상 지탱이 가능하였다.

베트남전시 한국군의 중대전술기지는 열악한 장비와 조직편성의 한계 속에서도 독창적인 군사교리를 발전시켜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다. '전쟁은 무기만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열악한 한국군의 상황에서 새로운 무기체계의 도입보다는 새로운 군사교리의 발전을 통하여 무기체계와 조직편성의 제한사항을 극복하고 새로운 게릴라전 수행방식을 창출하여 베트남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당시에 미군은 중대전술기지를 '화력기지(fire base)'로 명명하고 미군의 전술로 도입하는 연구에 착수하기도 하였다. 베트남전 이후 한국군의 모든 부대들은 주둔지 기지화 개념을 적용한 부대방호태세를 확립하였고 오늘날에도 그러한 개념은 지속되고 있다.

베트남전에서 보여준 채명신 장군의 군사적 천재성은 복합적인 안보환경변화 속에서 첨단과학기술군으로 도약하기 위한 국방혁신을 위해 매진하고 있는 우리 군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국방혁신을 추진하면서 군사적 천재 육성을 위한 노력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군사적 천재가 가져야 하는 혜안이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능력이며 전쟁에 있어서 결단력은 이러한 혜안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에 주둔하고 있을 때 운주당(運籌堂, 모든 계획을 세우는 집)을 지어 장수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연구하고 계책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패한 적이 없었다.

군과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간부들은 첨단과학기술의 군사적 활용과 함께 미래에 어떻게 싸울 것인가에 대한 혜안과 군사전문성을 갖추고 전쟁에 대비한 군사적 천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채명신 장군 10주기를 맞이한 군의 후배들이 가져야 할 자세다. 그리하여 우리 군에서 채명신 장군과 같은 군사적 천재가 많이 탄생한다면 우리의 안보는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채명신 장군의 안식을 기원한다.

이기성 전 한미연합사 부참모장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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