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칼럼] 네덜란드의 혁신 가치와 한국의 미래 구상

[칼럼] 네덜란드의 혁신 가치와 한국의 미래 구상

기사승인 2023. 12. 14. 18: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두진호 박사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
중동의 관문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의 올해 정상외교 여정이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지난 12일 암스테르담에서 빌럼-알렉산더르 국왕 내외가 주관한 환영식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21발의 예포를 발사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다해 윤 대통령 내외와 한국 대표단을 맞이했다. 윤 대통령은 국빈 방문 기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장비 기업인 ASML의 클린룸(Clean Room)을 방문했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혼이 서려 있는 리더잘(Ridderzaal)을 찾아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1907년 고종 황제는 일제의 주권 침탈을 규탄하기 위해 이준·이상설·이위종 등 3명의 특사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개최되던 네덜란드 헤이그에 파견했다. 하지만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 열강의 집요한 방해 공작으로 헤이그 특사단의 회의장 진입은 좌절됐고, 장외투쟁을 벌이던 이준 특사는 헤이그의 '드용(De Jong) 호텔'에서 유명을 달리했다. 네덜란드는 대한제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로부터 116년의 시간이 흘러 윤 대통령이 1961년 수교 이후 최초로 네덜란드를 국빈 방문했다. 네덜란드는 한국 전체 면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며, 인구는 1700만 명을 조금 넘는 유럽의 작은 국가다. 국토의 1/4이 해수면보다 낮은 태생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지속적인 혁신과 인재 양성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활용해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유럽 1위, 세계 4위를 차지하는 등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네덜란드는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한국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교역규모도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2022년 한국과 네덜란드 교역액은 160억달러(21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지난해까지 네덜란드의 한국 투자누적액은 379억달러(49조원)에 이른다. 부존자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중계무역과 혁신산업으로 국부를 창출해야 하는 네덜란드의 경제 생태계는 우리와 닮아 있다.

네덜란드의 ASML이 독점 공급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7㎚(10억분의 1m) 이하 반도체 초미세 공정에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지만 1년에 40대 수준으로 생산량이 통제된다. 중국 최대의 반도체 제작사 SMIC도, 우리의 삼성전자도 ASML의 노광 장비를 확보하기 위해 줄을 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세계 유일의 반도체 EUV 노광장비 생산 기업 ASML의 심장부인 '클린룸'을 방문했다. 삼성전자는 ASML과 1조원을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 센터 설립에 합의했다.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는 미래 반도체 인력 공동 양성을 위해 첨단 반도체 아카데미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우리 기업으로선 반도체 시장의 '게임 체인저'인 2nm 공정 기술력을 갖춘 ASML의 핵심 장비 선점 등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 실현을 위한 유리한 여건이 조성됐다.

116년 전 만국평화회의장에서 문전박대 당했던 한국이 이준 열사 등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으로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고, 마침내 네덜란드와 세계 초격차 기술협력을 지향하는 '반도체 동맹'이라는 유의미한 성과를 이끌어 냈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은 한국이 글로벌 중추 국가로 우뚝 섰음을 보여주는 여정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및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등으로 인해 글로벌 불확실성이 심화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에 대응해 9·19 군사합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한 우리 정부의 결정에 대해 북한이 9·19 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도 고조되고 있다. 올해 UAE 아부다비를 시작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이르기까지 숨 가쁘게 진행된 정상외교 성과 극대화를 위해 범정부적으로 통합된 노력이 중요하다.

정상외교 성과를 바탕으로 동맹 및 우방국과의 결속력을 강화해 자유민주주의와 평화를 수호하고 우리의 가치를 전 세계에 확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또 혁신의 가치에서 국가의 미래를 통찰하고 현재를 통합하는 네덜란드의 전략과 관행을 벤치마킹해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도전 요인을 적극적으로 돌파해 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