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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 주지마세요”… 지하철 역사 내 비둘기 ‘소동’

“먹이 주지마세요”… 지하철 역사 내 비둘기 ‘소동’

기사승인 2024. 06. 1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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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퇴치 대책 실효성 크지 않아
"포획으로 비둘기 개체 수 줄여야"
서울역
11일 오전 10시께 서울역 2층 대합실에서 비둘기 4마리가 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먹고 있다. /반영윤 기자
"아이고, 깜짝이야."

11일 오전 10시께 서울역 2층 대합실을 찾은 한 여성이 비둘기가 자신의 눈높이로 날아들자 몸을 움츠리며 "꺅"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는 긴 머리카락과 양손으로 눈을 가리고 비둘기가 시야 밖으로 떠날 때까지 10초가량 굳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서울역 대합실에는 비둘기 날갯짓 소리와 사람들의 얇은 비명이 번갈아 들렸다.

이날 본지 기자가 서울역 대합실에 2시간 동안 머물며 역사 내 11마리의 비둘기를 발견했다. 천장 철조 구조물에 줄곧 붙어 있던 1마리를 제외하곤 10마리 비둘기는 인파를 파고들며 대합실 의자와 쓰레기통 주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와 밥풀을 쪼아 먹었다.

역사 안으로 비둘기가 들어와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볼멘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와 코레일이 지하철역 비둘기 유입 방지책을 내놓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역사 내 비둘기로 인한 불편 민원 건수는 총 131건이다. 불편 민원 중 역사 안 비둘기 처리를 요청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회사 정년 퇴임 후 서울역을 매일 방문한다는 김모씨(56)는 "대합실에서는 발에 채는 게 비둘기"라며 "의자에 앉아 잠깐 멍 때리고 있으면 비둘기가 어느새 다리 옆에서 걸어 다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교통공사와 코레일은 버드 스파이크, 그물을 설치하는 비둘기 퇴치 대책을 마련했지만, 실효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드스파이크는 조류가 착지하지 못하도록 뾰족한 철침을 부착한 조형물이다. 이날 서울역 1번 출구에는 버드 스파이크 위로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서울역 인근 노상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A씨는 "철 가시가 깔려 있어도 비둘기가 계속 찾아와 손님들이 불편해 한다"며 "비둘기가 찾아올 때마다 막대기로 내쫓고 있다"고 했다.

신도림
서울 신도림역 곳곳에 '비둘기에게 먹이 주는 행위 금지'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반영윤 기자
서울 지하철역은 '비둘기에게 먹이주는 행위 금지'라는 안내판을 부착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했다. 최근 합정역은 맹금류 사진을 출구 곳곳에 붙여뒀고 신도림역은 비둘기의 천적인 황조롱이 모형을 개찰구 앞에 달아뒀다.

그러나 지하철 내 비둘기 유입을 원천적으로 막지는 못하고 있다. 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둘기는 집비둘기로 서식지를 옮기지 않고 한 곳에 1년 내내 머무는 텃새이다. 비둘기는 역 안에서 먹이를 계속 공급받고 역사를 안전한 곳이라고 인식해 지하철 역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강언구 서울 신도림역장은 "모형 설치 이후 비둘기가 줄긴 했지만, 모이를 주는 분들이 여전히 계셔서 비둘기를 아예 막을 순 없다"며 "역사를 꼼꼼히 청소하고 비둘기를 신속하게 내쫓아 고객 불편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비둘기 퇴치를 위해 역사 내 청결을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비둘기 개체 수를 줄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유해 야생 동물이 아니라 사람이 우선인 비둘기 퇴치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집단 포획 같은 방법으로 개체 수를 대폭 줄여야 역사 내 비둘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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