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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우리금융 쇄신, 임종룡 회장 사퇴부터

[이경욱 칼럼] 우리금융 쇄신, 임종룡 회장 사퇴부터

기사승인 2024. 08. 13.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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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대기자 사진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뱅크(은행)는 고리대금업이다. 흔히 말하는 '뱅커'(Banker·은행원)는 고리대금업자의 미화(美化)다. 세상이 변해 금융산업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산업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게 되면서 뱅크와 뱅커의 위상은 지속적으로 우상향하고 있다.

제 아무리 좋은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돈이 없으면 제품을 개발하고 팔기 힘든 상황이 된 지 오래다.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당대의 글로벌 기업들이 지금처럼 전 세계를 휘감는 영향력을 갖추게 된 데에는 뱅커와 은행의 역할이 지대했다. 이들 기업의 탄생지는 하나같이 남의 집 주차장이나 셋방이었다. 구글이 그랬고 마이크로소프트가 그랬다. 차고에서 시작한 구글이 미디어 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은행의 대출 덕 아니겠는가. 막대한 사업자금이 뱅커의 손을 거쳐 구글로 들어갔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개인도 부동산 등을 매입하려면 은행의 손을 빌려야 한다.

사업이나 부동산 구입 자금은 공짜로 빌려주는 게 아니다. 자금을 빌려주면서 당연히 거기에 상응하는 이자를 뗀다. 시장의 기준 금리를 토대로 이자의 적정선을 따져 빌려준다. 지금도 사업을 하려는 셀 수 없이 많은 사업가와 개인이 뱅크의 문을 간절히 두드린다.

뱅크는 예금을 받아 이를 바탕으로 대출을 진행하면서 이자의 차익을 먹는 구조로 돼 있다. '예대 마진'(예금과 대출 사이의 차익)이다. 예금 금리를 낮추면 낮출수록, 대출 금리를 올리면 올릴수록 예대 마진이 커져 수익이 증가한다. 고리대금업자들이 그랬듯이.

뱅크와 뱅커의 역할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 존재 가치는 더 커졌다. 뱅크는 단순히 예대 마진만을 노리지 않는다. 자체 상품은 물론 증권 상품까지 곁들여 팔면서 증권, 보험업과 무한 경쟁을 벌인다. 무한 경쟁의 목적은 당연히 예대 마진 확보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최고경영자(CEO)의 몫으로 상당 부분 배정된다. CEO가 경영을 잘했기에 예대 마진이 확대됐고 그에 따른 수익이 커졌다는 논리다. 뱅커의 역할도 인정받는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뱅커 급여는 최상위권이다. 선호하는 직종이 된 지 오래다.

뱅크가 돈을 토대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가면서 재래식 뱅크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프라인 지점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홈페이지와 모바일뱅킹을 통한 거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은행은 국가의 기간산업이다. 은행이 견실해야 국가가 견실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 제3, 제2금융권에서부터 부도 도미노가 발생했다. 그때 정부와 통화 당국은 부도 도미노가 제1금융권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제1금융권 부도 사태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이후 금융권 재정 건전성이 향상됐다. 금융감독 체계가 튼실해졌다. 당국의 입김과 영향력도 자연히 커졌다.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 관련 제도를 촘촘히 정비하면 금융감독원은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빈틈없는 감독에 나서고 있다.

이런 와중에 4대 시중은행인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횡령과 부정 대출 사례는 금융 관련 제도가 잘 갖춰져 있고 감독 체계가 훌륭하다고 해도 내부통제나 규제가 소홀하다면 다양한 불법, 탈법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최근 발생한 350억원 부정 대출과 관련, "우리금융에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고 계신 고객님께 절박한 심정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잇단 금융사고 발생에 이어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정 대출이 금융당국발(發)로 터져오면서 시장 신뢰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 최고경영자로서 사태 수습에 직접 나선 것이겠다. 우리금융의 최고 책임자가 잇단 부정행위에 대해 공식적인 사과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사정이 절박했다는 반증이다.

임 회장이 적시한 부정행위는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회주의적인 일부 직원들의 처신, 여전히 허점이 있는 내부통제시스템 등이었다. 이 중 주의 깊게 들여다봐야 할 대목은 바로 내부통제시스템이다. 은행의 신뢰는 강력한 내부통제시스템에서 비롯된다. 돈을 만지는 뱅커가 단 한 순간 판단을 잘못하게 되면 곧바로 독직(瀆職) 사건에 휘말린다. 그 결과로 은행 시스템의 신뢰 추락으로 이어지게 되면 그 은행은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 이런 규모의 부정행위가 드러난다면 CEO 등 임원진들의 비공식 사과로 끝나겠는가.

임 회장의 표현대로 경영진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철저히 반성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은행의 내부통제시스템을 점검하는 일이 과제로 남는다. 임 회장은 이를 점검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시장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인물이 점검하도록 길을 비켜주는 게 옳다. 실기하지 않는 선에서 신속하게 책임진다는 자세가 절실하다. 뱅크와 뱅커는 신뢰가 생명이다. 신뢰를 잃어버린 뱅크와 뱅커는 존재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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