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과도로 행정 비용 막대
학계 "문제점 인지하고 있지만 정부마다 입장차"
혼란 잠재우고 글로벌 기준 맞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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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공정거래법을 통해 만들어진 이 제도는 몇차례 개정을 거치며 완화와 강화를 반복했지만, 근본적으로 기업 자유의지를 저해하는데다 모호한 규정 탓에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문제제기는 지속됐다. 특히 학계는 현재의 기업 경영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23일 한국경영인학회는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 중회의실에서 대기업집단지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심포지움을 개최했다. 이날 심포지움에는 좌장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비롯해 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 안태준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윤경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학과 교수, 강상엽 북경대 국제법학원 교수 등이 참여해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논했다.
공정거래법이 1986년 개정되면서 생긴 대규모기업집단 지정 제도는 당초 대기업로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40여년 동안 적용 대상이나 범위가 소폭 변화하기는 했으나, 기업 환경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공시대상기업집단 기준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 머물러, 적용 범위가 더 넓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기준으로 88개 기업집단이 선정됐으며 계열사를 아우르면 3284개 사가 해당 규제에 적용된다.
먼저 지인엽 교수는 이날 발제를 통해 "기업집단지정제도는 40여개 법령에 인용되면서 여타 규제들의 적용 기준으로 활용돼 국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며 "기업의 비효율성을 야기한다는 비판이 오래 지속돼왔으므로 규제를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참석자들은 공통적으로 동일인지정제도부터 문제점이 있다고 본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기업집단은 동일인과 동일인관련자가 지배하는 집단으로 정의되는데, 이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 교수는 "경제적 실질과 무관하게 형식적 기준에 따라 규율될 수 있는 동일인 제도는 현재 기업경영 실태와 맞지 않는다"며 "소유와 지배 괴리로 기업가치가 하락하는것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였으나, 당장 기업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발제한 안태준 교수 또한 "동일인 지정이 계열회사 편입 등까지 다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일단 동일인과 관련자에 대한 규정이 정해져야하는데, 관련해서 구체적 규정이 없다"며 "결국 총수를 뜻하는 말이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동일인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라 모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경영권 분쟁이 친족 내에서 발생하는 경우 등을 언급하며 "친족이 동일인으로 분류되지만, 아직도 넓은 개념이고 동일인은 지배력이 없지만 동일인 관련자만 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계열회사로 편입되는 등 모호한 기준이 문제"라고 짚었다.
강상엽 교수 또한 "공정거래법은 동일인 지정제도로 대기업집단 정책에 대한 책임을 동일인에 지우고 있는데, 이는 규제를 과소 적용하거나 과다하게 적용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동일인 판단기준이 여러가지가가 있고, 자연인인 경우와 법인인 경우에 따라서는 규제가 다르게 적용되는 사례도 있다"며 규제의 모호성을 지적했다.
결국 정책의 당초 목적과는 달리 규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김윤경 교수는 이어진 토론에서 "공정거래법 목적이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한다는 의미였으나, 현재는 일반적인 집중이나 시장 집중(독과점) 등이 아닌 소유집중에 중점을 두는 제도로 변했다"며 "지주회사 제도 도입 기준으로 경제력 집중 억제 효과도 약화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 안 교수는 "공정거래법에 의거해서 결국 행정당국이 기업에 대해서는 더 큰 재량과 권한을 갖게 되는것으로,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때는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자본시장법, 상법 등을 통해서도 기업 견제와 감시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 또한 "규제와 자율은 어느정도 균형이 필요하긴 하지만, 기업에 대한 견제는 상법, 사법(私法) 등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며 "그동안은 이런 방법이 잘 통하지 않으면서 공정거래법이 이를 대신해 시장을 조정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이지만, 불명확한 규정·제도는 고처야한다"고 봤다.
또 지 교수는 "동일인지정제도나 상법 개정안 등은 결국 기업들의 행정 비용을 크게 늘리게 되는 것인데, 이로 인해서 기업가치가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고도 본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좌장 권재열 교수는 "정부당국과 입법기관은 현재 기업 경영환경에 대해 한국의 특유적인 현실을 강조하는데, 이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매우 왜곡돼있는 수준"이라며 "특히 대기업에는 한국적 잣대를 과도하게 적용하는 상황으로, 논의되는 개선점을 새 정부에서 심도있게 고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