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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지과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도덕정치학(Moral Politics)'에서 이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에 따르면 보수와 진보는 단지 정책 방향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가정의 도덕 모델, 즉 이상적인 부모 역할에 대한 관념 차이에서 비롯된다.
보수주의는 '엄격한 아버지의 도덕(Strict Father Morality)'을 따른다. 책임, 질서, 자기 절제, 규율, 보상과 처벌의 원칙을 강조한다. 반면 진보주의는 '자애로운 부모의 도덕(NuturantParent Morality)'을 추구한다. 공감, 배려, 평등, 약자 보호, 다양성 존중을 중시한다.
이러한 도덕 모델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정치란 결국 국민을 상대로 도덕적 설득을 시도하고 세계관을 제시하는 가치 담론의 현장이라는 뜻이다.
이 점은 엄부자모(嚴父慈母)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엄격함과 어머니의 자애로움이 균형을 이룰 때 자녀가 바로 서듯, 정치도 보수와 진보가 각기 엄부와 자모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할 때에야 국민의 삶이 안정되고 국정이 원활히 돌아간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 정치권은 그러한 균형과는 거리가 멀다. 여당과 야당은 국민(자녀)을 함께 육성하고 돌보는 부모가 아니라, 마치 이혼을 작정한 부부처럼 매일같이 당리당략적 정쟁을 벌이고 국민을 볼모로 삼고 있다. 아버지 없이 자라거나 어머니 없이 자라는 불행한 자녀(국민)를 양산할 각오를 한 일당(一黨)체제를 꿈꾸듯이.
더불어민주당은 다수 의석에 기대어 협치를 외면하고 있다. 입법을 독점하고, 의사 절차를 무시하며, 정당 간의 타협을 '굴복'으로 오해하는 태도는 '자애'의 진보정치가 아니라 독선의 정치다. 야당이 된 국민의힘 또한 조속히 당내문제를 수습하고, 분명한 대안을 가지고 보수적 가치를 실현할 엄부로서의 리더십을 회복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당정치는 근본적으로 국민과의 관계에서 도덕적 균형을 요구한다. 이때 진보정치가 직면하는 위험 중 하나는 포퓰리즘의 유혹이다. 고대 역사가 플루타르크는 말했다. "민중을 거스르면 민중의 손에 망하고, 민중을 따르면 민중과 함께 망한다." 이 말은 정치가 대중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그 이익에 영합하여 표를 얻는 것이 오히려 대중과 나라를 함께 파멸로 이끌 수 있음을 경고한다.
진보정치가 자애를 중시하다 보면, 국민의 요구를 무조건 수용하려는 선심성 복지·재정 무책임·급진적 분배 논리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감성적 선동 정치가 진영을 결속시키는 데는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제와 사회구조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대중들이 '떼쓰면 통할 것'이란 의식에 자리 잡으면 나라가 기울게 된다. 그러므로 정치란 공감만큼이나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보수 정치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감정과 현실을 외면한 채 원칙만을 고집하거나 과거만을 붙드는 수구적 '구태보수'는 엄부의 권위가 아니라 무능과 소통단절의 상징이 된다.
결국 필요한 것은 보수와 진보 모두의 절제된 도덕 감각이다. 공감과 책임, 배려와 원칙, 변화와 안정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진보적 가치와 보수적 가치가 원만한 조화를 이루어야 국화만사성(國和萬事成) 될 것이다.
정치는 국민을 자녀로 삼는 부모의 자리다. 국민은 정치인의 리더십을 통해 성숙한 시민으로 성장하고, 정당은 공동체의 도덕을 바탕으로 나라를 경영해 나가야 한다.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입법 폭주는 어떤 진영에서든 정치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대의정치가 더 이상 '정당인의 정당인에 의한 정당인을 위한 정치'가 아닌 진정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되지 않으면 파국이다. 정치는 정치인의 권력독점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전국민의 경제적 공생(共生), 정치적 공영(共榮), 도덕적 공의(共義)를 위해 헌신하는 추동력이어야 한다.
공생, 공영, 공의의 가치를 실현할 정치인들은 모든 국민 앞에 부모 된 심정으로 종의 몸을 쓰고 땀은 땅을 위해 눈물은 국민을 위해 흘리는 사표(師表)가 되어야 한다.
엄부자모의 도덕 정치야말로 국민을 공생 공영 공의롭게 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는 요체다.
이제 '실용주의'를 표방한 진보정권이 막 출범했다. 여당과 야당은 지금부터 진영 싸움이 아닌 도덕적 품성과 균형 잡힌 세계관으로 국민 앞에 설 때다. 정치와 정치인이 가정의 부모처럼 온 가족(국민)이 존경하고 고마워하는 존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필을 놓는다.
※본란의 칼럼은 본지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손대오 전 세계일보 편집인 주필·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