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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와 현재의 대화’ 조계종 강남 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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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중 기자

승인 : 2026. 09. 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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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견성사서 출발 조선 봉은사로 자리잡아
승과, 추사의 판전, 을축 대홍수 등 유적 남아
현대적 재해석으로 빛난 국가무형유산 생전예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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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 신라 원성왕 10년인 794년 연회국사가 세운 '견성사(見性寺)'를 기원으로 하는 천년고찰이다./사진=황의중 기자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일대는 코엑스몰·무역센터 등 고층 빌딩이 늘어선 21세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곳이다. 이 빌딩 숲 사이를 조금만 지나면 바로 옆에 녹지가 펼쳐진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수도산(修道山) 자락으로, 이곳에 자리 잡은 천년고찰이 대한불교조계종 봉은사다.

봉은사는 794년 신라 원성왕 10년 연회국사(緣會國師)가 강남구 삼성동 일대에 세운 '견성사(見性寺)'에서 출발한다. 견성사는 고려시대에도 그 이름을 이어가다 1498년 조선시대 성종의 무덤인 선릉을 지키고 명복을 비는 능침사찰(陵寢寺刹)로 지정되면서 '왕실의 은혜를 받든다'는 뜻으로 봉은사(奉恩寺)라고 불리게 된다. 1562년 문정왕후 때 중종의 능(정릉)이 선릉 옆에 오면서 그 자리에 있던 봉은사는 코엑스 옆인 현재 위치로 이전한다.

봉은사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조선 문정왕후 때부터다. 불교를 숭상했던 문정왕후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봉은사는 전국 선종(禪宗)을 대표하는 수사찰(首寺刹)로 지정된다. 문정왕후가 아끼는 허응당 보우스님(1515~1565)이 봉은사 주지로 부임하면서 폐지됐던 승과(僧科) 제도 또한 부활한다. 명맥이 끊겨가던 조선 불교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사건이었다. 승과를 통해 양질의 인재가 불교계에 유입됐고, 그 결과는 서산·사명대사 고승들이 나와 임진왜란·정유재란 때 나라를 지킨 승병(僧兵)으로 이어졌다. 유생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지만, 문정왕후는 조선 왕조와 한국불교에는 적지 않은 공헌을 한 셈이다. 코엑스 입구 자리는 승과평이라고 해서 승과를 치르던 벌판이었다. 지금은 표지석만 남아 있지만, 과거를 위해 전국의 승려들이 모여 벌판에서 시험을 치르는 모습은 상상할 수 있다. 길 건너 봉은사에서 수능철을 맞아 기도를 올리는 것도 따지보면 역사적 맥락과 동떨어진 것은 아닌 셈이다.

봉은사에 오면 꼭 보고 가야 하는 전각이 있다. 판전(板殿)이다. 판전은 불경을 새긴 목조 경판을 모신 곳으로 습기를 방지하고 목판의 뒤틀림을 막기 위해 바닥을 온돌 구조로 건축됐다. 1855년 철종 6년 남호 영기스님과 신도들이 중심이 돼 제작한 '화엄경소초' '금강경' '아미타경' 등 총 15종의 귀중한 경판이 옛 방식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지만 스님이 기도를 올리는 시간에는 일반인도 판전 내부를 볼 수 있다.

판전에 모셔진 화엄경소초의 경우 3175권의 경판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과거 전라도 전주 징광사와 경상도 함양 영각사 등에서도 화엄경소초를 목판으로 제작했지만, 이 판본들은 모두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소실됐다. 경전의 위신력 때문이었을까. 판전은 1939년 대화재와 한국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봉은사에 있는 전각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판전는 현판 글씨로도 유명하다. 조선 후기 서예가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마지막 작품으로, '판전'이란 글자 옆에는 "七十一果病中作 (71세 된 과노(果老)가 병중에 쓰다)"라고 쓰여 있다. 여기서 '과'는 추사의 별호다. 그는 이 작품을 쓰고 사흘 뒤 임종한다. 임종 직전에 남긴 글씨지만 완성된 그의 서체는 현판에 생생히 남아서 우리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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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엑스 입구 자리에 있었던 승과평 터 표지석. 조선 문정왕후 시절 봉은사 앞 코엑스 입구 자리는 승과를 시행하는 벌판이었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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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 현판. 조선 후기 최고의 문인서화가 추사(秋史) 김정희(1786~1856)가 남긴 생애 마지막 글씨로, "七十一果病中作 (71세 된 과노(果老)가 병중에 쓰다)"로 과(果)는 추사의 별호로 별세 사흘 전 쓴 유작이다./사진=황의중 기자
판전 저장고 모습
판전에 보관된 경판. 조선시대 제작된 화엄경소초 목판 중 전권이 온전히 보존된 곳이다./제공=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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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전에 보관된 목판./제공=봉은사
봉은사는 근현대 역사에도 족적을 남겼다. 1925년 한강 유역 지도를 바꿨다는 을축 대홍수 때 봉은사 주지였던 청호스님(晴湖·1875~1934)의 미담이 그중 하나다. 당시 홍수로 강물로 급격히 불어나자 잠실 일대 주민들은 나무 위에 매달려 목숨을 구하는 절대절명의 처지였다. 이 소식을 들은 청호스님은 사찰의 전 재산을 털어 배를 구했고, 위험에 주저하는 뱃사공들에게 보상금을 걸어 구조대를 직접 이끌었다. 그렇게 구해진 목숨이 708명에 달한다. 목숨을 건진 수재민들은 은혜를 잊지 않기 위해 성금을 모아 봉은사에 비석을 세웠다. 봉은사 진여문(일주문)을 지나는 길 옆의 부도전에 있는 '주지 나청호 대선사 수해 구제 공덕비'가 그것이다.

2000년 이후에 봉은사는 각계각층의 명사들이 방문하는 곳으로 유명해진다. 명진스님(1950~2026)이 봉은사 주지로 있던 시절(2006~2010)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몇 차례 찾아와 조언을 듣던 일화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경내 미륵대불에 모셔진 곳에선 이재용 회장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봉은사는 조계사와 더불어 서울의 대표 사찰인 탓에 조계종 총무원장이 외빈을 맞이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교황 레오14세도 2010년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를 관장하는 총장 시절 봉은사를 찾았다.

봉은사는 전통을 잇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와 대화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봉은사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이다. 생전예수재는 죽은 사람의 넋을 기리는 일반적인 천도재(영산재·수륙재 등)와 달리, 살아있는 사람이 자신의 사후 극락왕생을 위해 생전에 미리(預) 공덕을 닦는(修) 불교 의례다. 2025년 국가무형유산에 지정됐다.

생전예수재의 유래는 19세기 조선시대 풍속을 정리한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경기도 광주(현재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서 행해진 윤달 풍습에서 찾을 수 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윤달을 만나면 장안의 여인들이 다투어 와서 불공을 드리며 불전에 돈을 놓는데, 윤달이 다 가도록 끊이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조선시대는 조상 제사를 크고 화려하게 지내는 것이 사회적 체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시기다. 대규모 재단에 며칠 밤낮으로 진행되는 화려한 승무(僧舞)와 범패 가락은 유력가 집안 입장에선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현재 생전예수재는 그 의미를 확장해 49일간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 등 육바라밀을 닦는 '수행'이 됐다. 허례의식이 아닌 '강남 불자'에 맞는 실리적인 신행 기도 정진기간으로,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다.

현대적 재해석은 오늘날 봉은사의 강점이다. 여전히 선방(禪房)이 있고 여름철·겨울철 안거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국제선명상대회나 국제학술세미나를 통해 21세기와도 소통한다. 전통의 보전을 넘어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다. 이 때문에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남아시아센터장 강성용 교수는 "전통을 현대화하는 연구에 가장 적합한 표본을 제공하는 곳"이라고 봉은사를 표현했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드워드 할렛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했다. 봉은사야말로 이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곳이다. 멀리 외국 명소를 찾기 전에 강남 한복판에 있는 살아있는 역사를 체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한공간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있는 곳. 그곳이 봉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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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빌딩 불빛 속 봉은사 전경./제공=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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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축 대홍수 때 봉은사 주지 청호스님의 보살행을 칭송하는 공덕비. 홍수 4년 뒤인 1929년, 목숨을 건진 잠실·부리도 등의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세운 것이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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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 대웅전에서 봉행되는 생전예수재.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2025년 7월 국가무형유산 신규 종목으로 지정됐다./제공=봉은사
생전예수재 회향 전경
봉은사 대웅전에서 봉행되는 생전예수재./제공=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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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예수재 종이 장엄물을 제작 중인 스님들./제공=봉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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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은사의 명물 미륵대불. 미륵대불 뒷편이 수도산이다./사진=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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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불 옆에 관세음보살상. 공덕주 이름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의 방문 흔적을 엿볼 수 있다./사진=황의중
황의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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