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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피에히의 ‘프리미엄 꿈’ 싣고 달린 투아렉…24년 여정 마침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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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수 기자

승인 : 2026. 09. 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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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톤과 2002년 나란히 등장…폭스바겐 프리미엄 도전 상징
V6 디젤·에어서스펜션·네바퀴조향…마지막까지 기술 집약
3세대·120만대 역사 뒤로…파이널 에디션 끝으로 생산 종료
Touareg ?EDITION 20“
1세대 투아렉(오른쪽)과 2세대 투아렉(왼쪽), 그리고 3세대 기념 모델인 "EDITION 20"(가운데)./폭스바겐
155t에 달하는 보잉 747 점보기를 매달고 활주로를 달리는 스포츠유틸리티차(SUV). 20년 전 폭스바겐이 투아렉의 힘을 보여주는 방법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했다. 최고급 세단 페이톤과 함께 대중차 브랜드 폭스바겐을 프리미엄 시장에 올려놓겠다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폭스바겐그룹 회장의 야심을 그대로 투영한 투아렉.

그 투아렉이 24년 만에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폭스바겐은 올해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을 끝으로 내연기관 투아렉의 생산을 종료한다. 2002년 등장해 3세대에 걸쳐 120만대 이상 판매된 폭스바겐의 플래그십 SUV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최근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을 직접 시승하며 찬란한 마지막을 향한 찬사를 보냈다. 마지막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상품성은 여전히 현역이다. V6 3.0ℓ 디젤 엔진의 여유로운 힘과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 네바퀴조향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투아렉이 지난 20여년간 폭스바겐의 '기술 쇼케이스' 역할을 해온 이유를 여실히 드러낸다.

Volkswagen Touareg
폭스바겐 1세대 투아렉./폭스바겐
투아렉의 역사는 피에히 전 회장이 추진한 폭스바겐의 프리미엄 전략과 떼어놓기 어렵다. 당시 폭스바겐은 '국민차'라는 이름 그대로 대중차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고급차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피에히 전 회장은 브랜드를 한 단계 위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고급 세단 페이톤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2002년 페이톤과 투아렉을 나란히 시장에 내놓으며 프리미엄 시장에 발을 들였다. 폭스바겐 역시 당시 두 차를 통해 처음으로 프리미엄 세그먼트에 진입했다고 설명한다.

목표가 브랜드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이었던 만큼 1세대 투아렉에는 당시 폭스바겐그룹이 동원할 수 있는 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갔다. 포르쉐 카이엔과 같은 계열의 플랫폼을 사용했고, 상위 모델에는 최고출력 313마력에 최대토크 76.5㎏f·m를 내는 V10 5.0ℓ TDI 엔진까지 얹었다. V10 엔진을 단 투아렉은 2006년 무게 약 155t의 보잉 747을 끌며 세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VW Race Touareg ?off-road vehicle specially developed for marat
폭스바겐의 레이스 투아렉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 개발한 오프로드 경주차./폭스바겐
Grand Challenge 2005, Volkswagen Touareg Stanley
폭스바겐의 레이스 투아렉 다카르 랠리에 참가하기 위해 개발한 오프로드 경주차./폭스바겐
모터스포츠에서도 기술력을 증명했다. 경주차 '레이스 투아렉'은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자동차 경주로 꼽히는 다카르 랠리에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 연속 정상에 올랐다. 2005년에는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한 '스탠리'가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의 그랜드 챌린지에서 우승했다. 투아렉은 고급 SUV인 동시에 폭스바겐이 새로운 기술을 시험하고 보여주는 무대였던 셈이다.

24년이 흐른 뒤 만난 마지막 투아렉에서도 이런 성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파이널 에디션의 보닛 아래에는 EA897 evo3 V6 3.0ℓ TDI 엔진이 자리 잡는다. 최고출력 286마력, 최대토크 61.2㎏f·m의 힘을 8단 자동변속기와 4모션 사륜구동 시스템을 통해 네 바퀴에 전달한다.

2t이 훌쩍 넘는 차체를 움직이면서도 좀처럼 힘에 부치는 기색은 없다.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낮은 회전수부터 두툼한 토크가 차체를 밀어낸다.

Volkswagen Touareg 껮INAL EDITION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폭스바겐
최신 전기차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시대에 디젤 엔진이라는 단어부터 낡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운전석에 앉으면 선입견은 금세 옅어진다. 정속 주행에서는 디젤 엔진 특유의 진동과 소음을 찾기 어렵다. 엔진 회전수를 낮게 유지하면서도 언제든 차체를 밀어낼 힘을 남겨놓는다. 과거 시승에서 2열에 잠들었던 동료가 눈을 뜨자마자 "가솔린 모델이 새로 나왔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떠오를 만큼 투아렉의 V6 TDI는 정숙했다.

육중한 차체를 다루는 솜씨도 여전하다.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은 거친 노면의 충격을 한 차례 걸러내면서 차체의 상하 움직임을 억제한다. 고속에서는 차체 높이를 낮춰 안정성을 높인다. 도로를 평평하게 다림질하듯 지나가는 승차감은 고급 세단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올 휠 스티어링이 큰 차를 모는 부담을 줄인다. 저속에서는 뒷바퀴가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회전반경을 줄이고, 고속에서는 같은 방향으로 조향해 안정성을 높인다. 좁은 골목이나 주차장에서 차체 크기에 비해 움직임이 가볍고, 속도를 높여 코너를 돌아나갈 때는 네 바퀴가 큰 차체를 단단하게 붙잡는다.

Volkswagen Touareg 껮INAL EDITION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폭스바겐
이런 주행감각은 투아렉의 출신 배경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3세대 투아렉은 폭스바겐그룹의 MLB 에보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개발됐다. 같은 그룹의 포르쉐 카이엔, 아우디 Q7을 비롯해 벤틀리 벤테이가와 람보르기니 우루스 등도 같은 계열의 기술적 토대를 활용한다. 엠블럼은 폭스바겐이지만 그 아래에는 그룹이 보유한 프리미엄 SUV 기술이 녹아 있는 셈이다.

실내에서는 세월의 흔적과 플래그십의 품격이 동시에 느껴진다. 최근 출시되는 신차처럼 디스플레이가 대시보드 전체를 뒤덮지는 않지만 디지털 계기판과 대형 중앙 디스플레이를 연결한 '이노비전 콕핏'은 여전히 깔끔하다. 18방향으로 조절되는 에르고 컴포트 시트와 소프트 도어 클로징 등도 기본으로 갖췄다. 파이널 에디션에는 기어 레버와 도어 스커프, 윈도 프레임 등에 'FINAL EDITION' 레터링을 넣어 마지막 모델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오히려 화려함을 앞세우지 않는 점이 투아렉답다., 거대한 그릴이나 화려한 장식으로 존재감을 강조하지 않는다. 대신 엔진과 섀시, 서스펜션 같은 자동차의 기본기에 비용을 쏟아부었다. 1세대부터 이어져 온 투아렉의 방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은 투아렉의 가장 큰 장점인 동시에 24년 동안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담아도 폭스바겐 엠블럼을 달고 프리미엄 브랜드의 SUV와 경쟁해야 했다. 자동차의 완성도와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브랜드 가치가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투아렉은 긴 시간 증명해왔다.

Volkswagen Phaeton
폭스바겐 페이톤./폭스바겐
피에히 전 회장이 함께 내놓은 또 하나의 야심작 페이톤은 투아렉보다 먼저 무대에서 내려왔다. 폭스바겐은 2016년 페이톤 생산을 끝냈고 후속 모델도 양산하지 않았다. 회사는 당시 준비했던 2세대 페이톤 대신 전동화 전략에 역량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제 내연기관 투아렉까지 생산을 종료하면서 2002년 두 모델로 시작한 폭스바겐의 전통적인 프리미엄 플래그십 도전도 하나의 장을 마치게 됐다.

그렇다고 투아렉의 24년을 실패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폭스바겐이 처음부터 바라던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변신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투아렉은 3세대에 걸쳐 세계에서 120만대 넘게 팔렸다. 무엇보다 V10 TDI부터 에어서스펜션과 첨단 조명·운전자보조 기술까지 폭스바겐이 무엇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할을 꾸준히 수행했다.

Volkswagen Touareg
2006년 폭스바겐 투아렉 V10 TDI 모델이 보잉 747을 견인하는 장면./폭스바겐
마지막 투아렉을 몰고 나니 2006년 보잉 747을 끌던 1세대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당시 폭스바겐은 155t짜리 비행기를 끌어야 할 만큼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SUV를 만들었는지 설명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20년이 지난 파이널 에디션은 더 이상 그렇게 요란하게 힘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286마력의 V6 디젤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에어서스펜션은 묵직한 차체를 부드럽게 다뤘으며, 네바퀴조향은 큰 차를 한결 작게 느끼게 했다. 피에히가 꿈꿨던 폭스바겐의 프리미엄 도전은 이제 막을 내리지만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투아렉의 완성도까지 함께 낡은 것은 아니었다. 24년 전 브랜드의 격을 끌어올리라는 임무를 받고 등장했던 투아렉은 마지막까지 '폭스바겐이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차'라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Volkswagen Touareg ?FINAL EDITION“
폭스바겐 투아렉 파이널 에디션 실내./폭스바겐
남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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