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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거인 이재근 산청군수

지리산 아래 거인 이재근 산청군수

기사승인 2010. 11. 18.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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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약 지키려고 목숨까지 내놓았는데 뭘 못해”
양복 보다는 잠바를 자주 입어 ‘잠바군수’라는 애칭이 붙은 이재근 산청군수가 서울로 예산따러 가야한다며 양복을 입었다.  
[아시아투데이=양승진 기자] 이재근 산청군수는 격식 있고 폼 잡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격식이나 폼에 휩싸이면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엉뚱한 데를 쳐다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산청 일대에서는 이 군수를 ‘거인’이라 부르길 좋아한다. 호탕한 성격만큼이나 시원시원한 일처리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양복 보다는 잠바를 자주 입어 ‘잠바군수’라는 애칭이 붙은 이 군수는 군청에서 결재나 하는 그런 군수가 아니라 몸으로 부대끼며 현장을 누비는 그야말로 ‘불도저 군수’다.

이 군수는 군민과 3가지 약속을 했다.

첫 번째는 예산 문제로 4년만에 2배를 실현해 군민들을 감동케 했고, 두 번째는 2013년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유치로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놓자고 전국 팔도를 다니며 홍보에 나서고 있다.

그런 그는 종종 “쪽팔리게”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뭔 일을 해도 당당하게 하고, 또 하고자 하는 게 맞다면 의당 분명히 해 낸다는 의지를 담아 “쪽팔리게”로 표현된다는 것이 주위의 해설이다.

“공약 지키려고 목숨까지 내놓았는데 뭘 못하냐, 군수를 안 하면 안 했지 쪽팔리게는 안 하겠다”는 그를 만나봤다.


벼 수매현장을 찾은 이재근 군수.
◇“경계 대상에서 군민의 친구가 되다.”

이 군수는 올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압도적 지지로 군수에 재선됐다.

경남에서 최고 성적이었으니 군민들이 보는 이 군수는 ‘없어선 안 될 존재’쯤 된다.

이런 이 군수가 2006년 선거에 나섰을 땐 욕을 좀 먹었다. 어떤 이는 “벽보 붙이러 43년 만에 왔다”고 힐난하며 그를 깎아내렸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 군수는 “사실 군수 안 하려고 도망 다녔는데 어쩌다 잡혀 와서 출마했다”면서 “막상 군정을 살펴보니 큰일 나게 생겨 지인들에게 당선되면 욕보게 생겼다고 말했었다”고 회상했다.

이 군수는 당선된 후 그럴듯한 연설문 대신 작심한 듯 대 군민 선언을 했다.

그 첫 번째가 ‘경조사나 모임엔 안 간다’였다. 이 군수는 욕을 먹어도 할 수 없다고 판단해 밀어 붙였다. 그러자 “군수가 코빼기도 안 보인다”, “내 아버지 상인데도 안 온다”며 친인척을 불문하고 별 소리를 다했다. 그런 것이 6개월쯤 되니 그 본뜻을 알고 군수한테 초청장이나 청첩장을 보내는 일이 줄어들어 지금은 아예 없어졌다고 말했다.물론 단 한 번도 참석해본 일이 없다.

이 군수는 “나는 정치밥을 30년이나 먹은 사람인데 술 먹고 노래하고 노는 것 좋아하는 선수지만 나부터 변하자 라는 심정으로 시작한 것”이라고 일화를 소개했다.

그렇게 출발한 이 군수는 군민과의 약속으로 예산 확보와 2013년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유치를 내걸고 불이 나게 뛰어다녔다.

군수가 되고나서 경남 10개군 중 10위인 예산을 4년 내 2배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800억원에서 출발한 군정은 취임 6개월 만에 6위로 올라섰고, 2009년 3600억원을 넘어서 마침내 꼴찌에서 2번째를 기록하자 군민들이 조금씩 그를 인정했다.

물론 이 군수는 예산관련 담당직원이 빈손으로 돌아오면 군청으로 아예 오지 못하게 할 만큼 모질게 밀어부쳤고, 그 자신도 일주일에 두 세 번 서울을 다녀갈 만큼 땀나게 뛰어 다녔다.

예산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2013년 세계전통의약엑스포 유치에 목숨을 걸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박람회 유치에 실패하면 군수직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 만큼 자신 있었고, 해볼 만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모든 걸 걸었다.

“박람회 유치를 못했다면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는 이 군수는 “이제 지리산에 케이블카 놓는 것만 하면 내 할 일은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청시장을 찾은 이재근 군수를 상인들이 반갑게 맞고 있다.
◇“산청 아니면 안 되는 것만 해야 한다.”

이 군수의 고향은 산청군 생비량면 도전리다.

이곳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유학을 떠난 후 정치밥 30년 먹고 나니 등 떼밀려 군수를 하게 됐다는 이 군수는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다.

산청은 자기 고향이지만 이곳은 슬픈 역사만큼 애잔한 현대사가 녹아 있다.

이 군수는 “산청은 6.25를 16년이나 겪어 어느 곳보다 힘들게 살았다”면서 “그 보상차원에서도 정부가 배려를 해야 한다”고 운을 뗐다.

산청은 여순반란사건과 6.25를 거쳐 1963년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살해되기까지 16년 동안 전쟁을 겪었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아버지 없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물론 연좌제 때문에 또 고초를 겪었다. 특히나 지리산 아래는 대부분 산지여서 농사지을 땅도 없어 그 후손들 고통은 더 심했다는 것이 이 군수의 설명이다. 그래서 중앙정부가 그들의 역사적 아픔을 풀어주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다.

산청군은 지난 4일 11개 읍면 주민 1만2000명이 모여 지리산 케이블카를 놓자고 범군민 결의대회를 가졌다. 무려 군민의 3분의 1 이상이 모여 의지를 다졌기에 주위 시·군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군수는 “중앙정부에 잘 사는 모델 하나 만들어 보자고 제의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며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도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블카가 건설되면 박람회와 연계돼 하루 평균 1만명, 연간 100만명 이상이 찾아오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환경문제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환경을 보호하는 측면이 있어 그들도 이해하리라 보고, 이런 게 세계적 추세면서 지금은 기술력이 좋아 환경문제는 충분히 커버할 수 있다”고 강변했다.

이 군수는 군정을 이끌면서 모든 포커스를 관광에 맞추고 있다.

‘산청이 1등할 수 있는 일, 산청 아니면 안 되는 것들, 다른 지자체를 따라 해서는 절대로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최고의 환경, 자연, 먹거리, 약초, 전통문화 등을 묶어 시너지 효과를 보자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산청 한의학축제인데 올해 10회째를 맞아 105만명이 다녀갈 만큼 기염을 토했다.

이 군수는 “이제 산청이 촌티를 싹 벗어 박람회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는 됐다”면서 “예전에는 누구에게 투자하라고 권유하기가 민망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축제, 박람회, 둘레길 등이 연계돼 사계절 관광지로 오히려 벤치마킹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직자 역력 강화 교육을 하고 있는 이재근 산청군수.
◇“공무원이 선거판에 기웃 거리면 망한다.”

이 군수는 보기 드물 게 엉뚱한 면이 있다.

어느 날 공무원들을 모아놓고 “쪽팔리게 공무원이 선거판에 기웃거리고, 끝나고 나서는 논공행상을 하면서 줄을 세우는 그런 일을 해서는 망한다”고 말하고 공무원은 선거에서 해방돼야 한다고 프리를 선언했다.

“누가되든 눈치 보지 말고 묵묵히 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선배다 후배다 쫓아다니면 결국 그게 부메랑 돼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며 “절대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선거에서 해방을 선언했다”고 말했다.

이 군수는 “쪽팔리게”하는 말 외에도 “나는 선수다”는 말도 자주 쓴다.

정치판 30년을 떠돌면서 이 것 저 것 다해봤기 때문에 저돌적으로 밀어붙일 땐 붙이고 기술을 부려야 할 때는 또 기술을 부려야 한다는 것이 ‘선수’로 표현되는 셈이다.

남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군수는 현장에 있는 것이 ‘선수’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작품 하나 만들자고 대드는 폼은 영락없이 ‘선수’다.

이 군수가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선 이상 그 결실이 맺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산청=글.사진 양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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