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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사회주의의 두 민중

[칼럼] 사회주의의 두 민중

기사승인 2019. 11. 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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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변호사 사진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고문 / 숙명여대 석좌교수
아름답기 그지없는 성바실리 대성당이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우뚝 솟아있는 광경은 꿈결처럼 신비롭다. 붉은 광장에는 구세주 그리스도성당, 카잔성당, 우스펜스키 성모승천성당도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가 무신론 이데올로그의 본거지인 크렘린 곁에서 지금껏 신앙고백을 이어오고 있는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프롤레타리아의 ‘피의 일요일 봉기’가 일어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데카브리스트 광장에는 웅장한 이삭성당이 황금빛 돔으로 빛나고 있다. 볼셰비키의 혹독한 탄압을 헤쳐 나온 정교회의 모습이다.

마르크스는 “종교 비판이 모든 비판의 전제”라고 주장했거니와, ‘빈자(貧者)의 차르’라는 레닌도 “종교는 질 낮은 독주”라고 민중을 선동했다. “기도할 시간에 노동을 하라!” 신앙보다 노동을 더 신성시하며 종교탄압에 나선 볼셰비키는 러시아 전역의 5만5000여 성당 가운데 5만4000여 곳을 파괴했고, 신학교 출신인 스탈린은 유서 깊은 구세주 그리스도성당마저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해버렸다.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승전을 기념해 세워진 이 성당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이 초연된 곳이었다. 지금의 성당 건물은 소련 해체 후에 복원된 것이다.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모든 정교회 성당을 파괴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대다수 민중은 얼마 남지 않은 성당이나마 그대로 보존되기를 간절히 희망했다.

10세기 이후 러시아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되어온 정교회는 한낱 외래종교의 유물이 아니라 그네들의 삶속에 뿌리박힌 역사이자 문화였기 때문이다. 협박과 선동으로도 정교회 신자들의 영성(靈性)을 꺾지 못한 볼셰비키는 결국 정치사제들과의 타협을 거쳐 그 정신 나간 성당파괴 만행을 멈추고 말았다.

역사와 문화의 생명력을 신뢰하는 것이 이성의 겸손이다. 황제의 즉결처형에 환호할 만큼 볼셰비키의 선동에 휘둘렸던 러시아 민중이 뒤늦게나마 이성의 겸손을 회복해 무신론의 포퓰리즘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파괴는 당면과제다. 그 안에 건설이 있다.(破字當頭 立在其中)” 마오쩌둥의 선동에 놀아난 홍위병들은 중화사상의 중심축인 공맹(公孟)을 봉건잔재로 단죄하고, 공자의 묘와 사당에 야만적 테러를 가했다. 수백명의 신·구교 성직자들을 즉결처형하고 노자가 동양사상의 정수(精髓)인 도덕경을 강론한 누관대(樓觀臺)도 무너뜨렸다.

러시아 민중이 선택한 이성의 겸손을 중국 민중은 거부했다. 종교적 영성이 결핍된 탓일까. 그들은 이성 대신 포퓰리즘의 야만을 선택했다. 문화혁명이라는 이름의 반문화적 광기가 때려 부순 것은 역사와 사상의 가시적 상징물들이었지만, 파괴된 것은 중국인의 정신과 문화 그 자체였다.

대한민국은 건국 이래 70여 년 동안 자유·민주·인권의 역사를 피와 눈물로 써내려왔고, 두터운 인문정신으로 문화의 꽃을 피워냈다. 안타깝게도 이 소중한 역사와 문화를 뒤엎으려는 반(反)이성의 포퓰리즘이 지금 우리 앞에 어른거린다.

동족을 학살한 북한 세습독재정권을 동족의 이름으로 끌어안고 우리 헌법정신의 씨알인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지워버리려 든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 동원해 진실과 거짓을, 정의와 불의를 뒤바꾸려 한다.

나치는 히틀러유겐트와 함께, 문화혁명은 어린이홍위병과 함께 등장했다. 파시즘은 순수하고 어린 영혼까지 오염시킨다. 전체주의에서 국민은 더 이상 주권자가 아니다. 선전의 도구, 선동의 객체일 따름이다.

러시아 민중은 역사와 문화와 종교를 파괴하는 볼셰비키의 선동을 이성의 겸손으로 물리쳤지만, 중국 민중은 노자와 공자의 흔적마저 없애려는 홍위병의 야만적 난동에 덧없이 휩쓸려갔다. 러시아와 중국, 사회주의의 두 민중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 이성과 포퓰리즘, 이 둘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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