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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수저-흙수저’ 타령을 나무라기 전에 반성할 것들

[칼럼] ‘은수저-흙수저’ 타령을 나무라기 전에 반성할 것들

기사승인 2016. 03. 1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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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사회 젊은이들 사이에 은수저-흙수저론이 회자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지금 청년들이 자신의 불운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지 않고 남 탓, 사회 탓으로 미루고 있다고 야단쳐야 할까? 아니면 잘난 부모의 영향력 덕분에 그 자녀들까지 부당하게 혜택을 누리는 게 광범위하게 퍼진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것으로 봐야 할까?


자신이 흙수저로 태어나 취업도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젊은이는 일정부분 자기의 실패를 남 탓으로 돌리는 심리가 작용해서 그런 말을 할 수도 있다. 좋은 인재를 외면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어렵다. 머리손질을 잘 하는 사람을 뽑지 않고 권력을 가진 힘센 사람의 아들을 뽑는 미장원이 있다면 그 미장원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소비자들이 외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가 소비자들의 선택을 얻기 위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라면 젊은이들의 흙수저론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힘센 사람이 그 미장원이 잘되게 밀어줄 수 있다면, 혹은 그 미장원을 망하게 할 권력이 있다면 그 미장원은 힘센 사람의 아들을 뽑을 수도 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쩌면 적극적으로 이런 이들을 뽑고자 할지도 모른다. 저명한 공공경제학자 홀콤(Randall Holcombe)은 이런 사회를 자유주의 사회에 대비해서 연고주의(cronyism) 사회라고 불렀다. 연고주의 사회란 가족, 친지, 지지세력 등 연고자들이 개인적인 연줄로부터 그 집단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이용 가능하지 않는 이익을 얻는 체제다. 만약 우리 사회가 이런 연고주의 사회라면 흙수저론을 말하는 청년들을 남 탓만 한다고 비난하기 어렵다.

은수저-흙수저 논란을 바라보는 힘없는 부모들의 마음은 참담하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식이 기뻐할 때 자신의 일보다 더 뛸 듯이 기뻐한다. 이처럼 자녀의 성공에 깊은 만족을 느끼는 것은 진화론적 근거가 있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가 자식을 통해 이어지므로 자손의 번창은 자신이 성공하고자 하는 숨겨진 이유라는 것이다. 부모들은 국회의원들의 갑질로 그 아들과 딸이 좋은 자리에 취업을 했다고 하면 자신의 아들이나 딸이 박탈당했을 기회를 생각하며 분노한다. 대기업 귀족노조가 노동자들을 위해 투쟁한다면서 자신들의 아들과 딸에게 그 기업의 일자리를 세습하는 계약을 맺는다는 보도를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우리 사회는 어디에 가까운 것일까?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에 비해 기업들은 자신들의 부가가치를 높여줄 인재를 찾을 것이고 그런 정도까지는 너무 흙수저론에 빠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연고주의가 강하게 남아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기업들이 신규채용을 하면서 입사지원자들로 하여금 부모와 부모의 직업 혹은 가까운 친지들 가운데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람들이 누군지 적어내도록 했었다. 지금은 상당히 없어진 관행이라고 하지만 이런 유형의 정보에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민감한 편이다. 아직 우리 사회에 연고주의가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 오펜하이머(Franz Oppenheimer)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재화를 얻는 두 가지 방법을 대조한 바 있다. 하나는 노동이고 다른 하나는 ‘강탈’이다. 연고주의 사회는 권력을 이용한 일종의 강탈이 행해지는 사회다. 우리 사회는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외형적인 규칙이 아니다. 겉으로 나타난 사회의 규칙이 연고주의와 거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연고주의에 따라 움직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그런 규칙을 따르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자신의 실패를 흙수저 탓으로 돌릴 때 그들을 나무라기 전에 어른들이 먼저 우리 사회에 아직 연고주의가 퍼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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