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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한반도의 새로운 지정학

[이효성 칼럼] 한반도의 새로운 지정학

기사승인 2021. 01. 24.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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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 자문위원장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주필
한반도는 세계 4대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있다. 북으로는 중국 및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남으로는 일본 및 미국과 태평양을 접하고 있다. 그 때문에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에 한반도는 열강들의 침략과 각축의 장이었다. 한반도를 시장화하려는 미국, 프랑스, 일본의 개항을 요구하는 침략 그리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노린 청일전쟁 및 노일전쟁을 거쳐 한반도는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한반도의 피할 수 없는 지정학적 운명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것은 지정학적인 불리함 때문이라기보다는 조선의 국력이 너무 약한 때문이었다. 소중화(小中華) 사상에 빠진 조선조, 특히 대원군의 쇄국 정책 탓으로 조선은 국제 정세에 어두워 산업화에 뒤처지고 따라서 제국주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힘을 키우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고종은 외교에 나름의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그 노력은 대체로 헛수고였다.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약소국의 외교력은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약 한 세기 남짓 지난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매우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한국은 강대국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남한은 핵무기는 없지만 군사력 세계 6위, 경제력 세계 10위의 하드 파워 강국이다. 게다가 소프트 파워에서는 더 큰 강국으로 부상했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자유롭고 안전한 민주주의 나라이고, 세계 굴지의 제조업 국가다. 세계의 많은 젊은이들이 ‘한류’에 매료되어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을 좋아하여 관광, 취업, 유학을 위해 한국에 오며, 민주화 시위에서 한국어 및 한국 노래와 율동을 이용하기도 한다.

북한은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왕조국가나 다름없는 시대 착오적인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 최빈국임에도 군사적으로는 핵무장을 거의 완성하여 미국이 위협을 느낄 정도다. 일본은 30년 장기 불황, 제조업의 퇴보, 디지털화의 실패 등으로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러시아는 중국과 일본을 경계하며 극동 개발을 위해 한국의 자본과 기술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중국은 서방의 경제권에 편입되어 경제력이 커지자 전랑외교를 펼치며 미국의 패권에 맞서다가 미국의 견제를 받게 되자 한국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부심하고 있다. 미국 또한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 한국의 적극적인 가담을 바라면서 그 일환으로 영국과 함께 주요 7개국(G7)을 주요 민주주의 10개국(D10)으로 확장하여 한국을 포함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관계는 과거와는 판이하다. 한 세기 전의 한반도의 주인은 힘이 없었기에 그 운명이 강대국들에 의해 좌우되었다. 하지만 현재 한반도는 그 분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우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강대국들이 한국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한국의 선택을 바라는 처지가 되었다. 한반도의 지정학이 이제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제조업의 발전을 통해 군사력과 경제력을 키우고, 한류, 교육, 사회 인프라 등을 통해 소프트 파워까지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반도의 지정학이 숙명의 질곡이 아니라 힘에 좌우되는 관계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참여해 큰 희생을 치르며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미군을 한국에 계속 주둔시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며 발전하는 데에 기여했다. 반면에 중국은 북한의 남침을 거들어 한반도 통일을 막았다. 한국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중 갈등에서 한국이 어느 편에 서리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한국은 이미 미군에 중국이 코앞인 곳에 세계 최대의 해외 주둔기지를 제공했다. 한국은 중국에 당당해야 하지만 좁은 황해를 두고 마주한 처지에서 그들의 이익에 반하는 일에 앞장서거나 큰소리를 내는 것은 외교적으로 미숙한 처사다. 새로 출범하는 바이든 정부는 이 점을 헤아리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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