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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한국의 기적’의 진정한 의미와 남겨진 과업

[이효성 칼럼] ‘한국의 기적’의 진정한 의미와 남겨진 과업

기사승인 2022. 02. 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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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본지 자문위원장_전 방송통신위원장2
이효성 아시아투데이 주필
한국은 35년 동안의 일제의 식민 수탈과 착취에서 벗어난 지 5년 만에 발발한 한국 전쟁으로 전 국토가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한국전 초기에 유엔군을 지휘한 맥아더 장군은 그 참상을 보고 “이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 이 나라는 100년 후에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정했다. 이런 단정은 맥아더 장군만의 판단은 아니었다. 한국전의 휴전 협정을 감독하기 위해 파견된 유엔 특별위원회 책임자였던 인도 정치인 벤갈리 메논도 “이 나라 사람들은 중세 시대에 살고 있다. 어찌 쓰레기통에서 꽃이 자랄 수 있겠는가”라고 평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정확히 한 세대인 30여 년 만에 한국은 산업화에 성공했다. 이 사실은 1980년대부터 전 세계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한강의 기적” 또는 “한국의 기적”이라는 말과 함께 경제 발전의 모델 케이스로 한국이 거론되고 연구되기 시작했다는 점이 입증한다. 독일의 한 언론도 2016년 “한국은 자신의 경제를 한 세대 만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의 하나로 변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저명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도 “한국은 현대 세계에 알려진 가장 커다란 기술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경탄했다.

한국의 기적은 산업화와 함께 민주화에서도 일어났다. 산업화보다 좀 늦기는 했지만 1980년대 말까지는 한국 국민들은 많은 희생 끝에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대통령 직선제를 관철했다. 그리고 민주화를 되돌릴 수 없는 확고한 제도로 정착시켰다. 군사 정변을 일으켰던 자들과 부패한 대통령을 감옥에 보내고, 무능한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리하여 한국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누리고 있다.

사실 세계는 한국의 경제에 비관했던 만큼이나 한국의 정치에도 비관적이었다. 1952년 《더 타임스》지 사설에는 한국 전쟁의 참상을 전달하며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국 정치는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 그리고 박정희와 전두환의 군사독재로 얼룩졌다. 그러나 4·19의거, 5월의 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달성하고, 2017년 촛불시위를 통해 성숙시켰다. 그러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7년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 속에서 빛났다”고 칭찬했다.

한국의 기적은 산업화와 민주화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한국은 “한류”라는 이름으로 문화적으로도 성공했다. 한국은 음악, 영화, 드라마, 웹툰, 게임, 한국어, 의식주 등 거의 문화 전반에서 세계적인 붐을 일으키고 있다. 한 독일 언론의 지적처럼, 한국은 서양 대중문화의 지배를 깬 유일한 나라다. 문화에서 한국이 보여주고 있는 수준과 범위의 세계적인 붐을 일으킨 나라는 극소수다. 한국은 민족지도자 김구가 염원했던 “높은 문화의 힘”도 달성한 것이다.

이러한 ‘한국의 기적’은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아주 기이한 일”이란 사전적 의미의 불가해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기본적 소양과 자질, 높은 열망, 과감한 도전, 야심찬 계획, 좌절하지 않는 추진력, 할 수 있다는 자신감 등이 어울려 만들어낸 인간적 행위의 성취물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 미국인 선교사는 “한국인은 대단한 지적 능력이 있고 예리하고 탐구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결단력을 갖춘 민족”[로버트 엘 워드, 《한국 상황(The Korean Situation)》]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의 기적’은 한국인의 이런 특성이 발휘된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이 기적은 아직 미완이다. 인도 시인 타고르는 1929년 《동아일보》의 요청으로 한국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동방의 등불〉이라는 4행시 한 편을 보냈다. 그 시는 삼일운동을 빗대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 한국은 등불을 든 이들의 하나였다. / 그 등불은 다시 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 동방의 광명을 위해서.”라는 예언적인 것이었다. 그의 예언대로, 지금 그 등불은 다시 켜져 동방의 광명으로 빛나고 있다. 하지만 그 등불은 오직 남한의 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등불도 마저 켜서 동방의 광명을 더 밝고 온전한 빛으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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