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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칼럼] 삼일 독립 운동의 의의

[이효성 칼럼] 삼일 독립 운동의 의의

기사승인 2023. 03. 0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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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 본지 자문위원장_전 방송통신위원장2
아시아투데이 주필
삼일 독립 운동은 우리가 1910년 일제의 강압으로 식민지가 된 지 10년 만인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남녀노소가 참여한 거국적이고 비폭력적인 독립 운동이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철저하게 탄압하고 차별하는 치안 위주의 가혹한 무단 통치로 한국인의 분노를 자아냈고, 그 결과 한국인들의 항일 의식이 고취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1918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를 위한 기본 지침의 하나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이는 실은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 등 패전국의 유럽 속국에만 적용되는 원칙이었으나, 아시아 각국은 이를 모든 민족에 해당하는 원칙으로 오해했다)를 제창하였고, 1919년 2월 8일에 일제의 한국인 유학생들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조선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립 선언서를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삼일 독립 운동은 종교인들이 주축이 된 민족 대표들이 서울 태화관에서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고, 학생과 시민들이 탑골공원에서 독립 선언서를 낭독한 후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종로에서 만세 시위를 벌임으로써 시작되었다. 이후 이 운동은 전국 각지에서 같은 형태로 전개되었으며 전국에서 202만3000여 명이 참여했다. 전국의 시위 회수는 1692건이었고, 이 가운데 60% 이상이 3월 하순과 4월 초순에 일어났다. 시위의 중심은 학생과 지식인이었으나 일반 민중으로 퍼져나가 노동자, 농민, 상인들을 포함하여 계층, 직업, 신분에 관계없이 참여했다. 일제는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여,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고, 4만5000여 명이 구속되었다.

삼일 독립 운동의 여파로 일제의 조선 식민지 통치 방식은 무단 통치 대신 문화 통치를 표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채찍 대신 당근을 내세웠다고 해서 일제의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탄압이 사라진 것은 아니고 오히려 더 교묘하고 악질적으로 바뀌었다. 일제는 한국 역사의 시공을 축소·왜곡하고, 한국인들에게 정체성론과 타율성론을 주입하고 한국인은 비열하고 열등한 민족으로 가르쳐 자기비하에 빠지게 했다.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 사용하게 했으며, 한국인들에게 일본식 창씨개명을 강요하고,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가가호호 쇠붙이를 압수해 가고, 위안부·징용공·학도병 등을 강제로 동원하는 등으로 조선에서의 수탈과 탄압이 오히려 더 심해졌다.

삼일 독립 운동의 진정한 의의는 그 결과로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건립되어 후에 우리 헌법에 의해 대한민국의 법통이 되었으며, 대내외에서 독립 운동을 자극하고 보다 더 조직적으로 전개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 있다. 그리하여 국내에서 1926년 6·10 만세 운동과 1929년 광주 학생 운동이 일어났으며, 해외에서는 독립 운동이 활성화되었고,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서는 독립군의 무장 투쟁이 활발해졌다. 삼일 독립 운동의 또 다른 큰 의의는 세계 약소민족의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과 독립 운동에 미친 영향이다. 삼일 독립 운동은 세계 각지의 식민지에서 민족의식의 각성과 독립 정신을 자극했다. 세계 최초의 비폭력 독립 운동으로서 삼일 독립 운동은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비폭력 저항운동을 비롯하여 필리핀, 이집트 등 세계 각지의 비폭력 독립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삼일 독립 운동은 이런 의미에서 우리만의 독립 운동이 아니라 전 세계의 독립 운동으로 기념되어 마땅하다. 전국에는 서울 장충동의 삼일독립운동기념탑을 비롯하여 기념탑들과 기념비들이 산재해 있다. 그러나 대체로 외진 곳에 조촐한 형태다. 전 세계인이 방문하고 의의를 되새길 수 있도록 세계 약소국 독립 운동의 역사와 성과를 정리하여 전시하고, 독립을 위해 희생된 이들을 기리고, 독립 정신을 고취할 수 있는 대규모의 기념물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많은 이들이 방문할 수 있게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파리의 '에펠탑', 런던의 '런던아이'처럼 그 자체가 기념물이면서 관광의 대상인 거대한 기념물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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