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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머 같은 글은 의성 김씨 학봉 종택 13대 종손 김용환의 무남독녀가 쓴 것이다. 하나뿐인 외동딸이 시집갈 때 혼수품으로 사오라고 시댁에서 보낸 돈마저 노름밑천으로 가져간 채 헌 장롱을 가져가게 했으니, 집안과 주변 사람들의 원망과 탄식이 오죽했을까. 하지만 이 글은 아버지에 대한 회한과 함께 존경의 마음이 담겼다. 평생 원망했던 부친이 먼 훗날 건국훈장을 추서받던 날 남긴 서간문이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를 살다간 학봉 종손 김용환은 노름꾼으로 이름이 높았다. 명문가의 후손으로 당대에 집안을 말아먹은 전형적인 파락호(破落戶)였다. 도박판에 빠져 현재의 가치로 200억원에 달하는 종가의 전답을 다 팔아먹은 망나니였다. 본인이 살던 종가집마저 날려버리자 문중에서 십시일반 돈을 거두어 되사오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후 밝혀진 그의 행적에 사람들은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용환은 파락호와 망나니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온갖 수모와 비난을 감수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만주 독립군에 군자금을 보냈던 것이다. 이 극적인 이야기는 2013년 한국국학진흥원이 경북 안동에서 개최한 종가포럼에서 창작연극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로 부활하기도 했다. 김용환은 어느 안동 출신 학자가 쓴 ‘양반동네 소동기’에서 흥선대원군 이하응 등과 함께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 중 한 사람으로도 꼽혔다.
더불어민주당의 어느 의원이 최근 대통령 당선인을 ‘윤석열씨’라 칭하고, 대선 결과에 ‘낙심과 함께 황당한’ 심정을 토로하며, “망나니들의 장난질에 부서지고 망가지더라도 결코 무릎 꿇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새 대통령 선출로 정권교체에 동참한 국민들은 모두 ‘망나니들의 장난질’에 부화뇌동한 시정잡배라도 되는 셈인가. 누가 망나니인가는 머잖아 역사가 입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