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동지, 밤이 가장 긴 때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동지, 밤이 가장 긴 때

기사승인 2020. 12. 21. 04:00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절기 에세이
오늘(12월 21일)은 연중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winter solstice)일이며 동지 절기의 첫 날이다. 황도 상의 태양의 위치로 말하면, 북반구에서 동지는 하지 때 북회귀선에 이르렀던 태양이 반년 동안 계속 남하하여 갈 수 있는 황도 상의 가장 남쪽인 남회귀선(南回歸線)까지 내려간 때다. 동지 때는 지구의 자전축이 태양을 등지고 있어서 지구의 북반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어진 때이기도 하다.

동짓날 해는 연중 가장 남동쪽에서 떠서 가장 남서쪽으로 지며 이날 해의 남중고도가 연중 가장 낮다. 이날 서울에서의 남중고도는 약 29도로 약 76도인 하지 때보다 무려 47도나 더 낮다. 이는 그만큼 햇빛이 정남향의 창으로 하루 종일 방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난방시설이 부족했던 옛적에 우리 선조들이 정남향 집을 짓고 남쪽으로 방문이나 큰 창을 낸 이유이기도 하다.

동지가 있는 달을 동짓달(음력 11월·양력 12월)이라고 부르는데 황진이의 저 유명한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 /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라는 시조에서 보듯, 동짓날을 가지고 있는 동짓달이 연중 밤이 가장 긴 때다. 동짓날은 해 뜨는 시각이 7시 43분, 해 지는 시각이 17시 18분으로 밤이 낮보다 4시간이 50분이나 더 길다. 하지만 동짓날부터 해는 다시 조금씩 북상하여 하짓날에 가장 북쪽까지 온다. 그래서 “동지가 지나면 해가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다”는 속담도 있다.

동지 팥죽 절기 에세이 최종
동짓날 팥죽을 쑤어 동치미와 곁들어 먹고, 집 곳곳에 뿌리거나 한 그릇씩 떠놓고 이웃 간에 나누는 풍습은, 귀신과 액운을 쫓는다는 토속 신앙에서 비롯됐다. / 이효성 주필
이처럼 동지는 북반구에서 볼 때 태양이 가장 멀어졌다 다시 점점 가까워지는 천문학적 전환의 시점으로 역법(曆法)의 기산점(起算點)이다. 그래서 절기 가운데 동지의 중요성이 더 크고, 고대에는 24절기 중 동지를 가장 큰 명절로 즐겼으며, 동지는 직접적인 풍습도 가장 많은 절기였다. 동짓날부터 낮 길이가 다시 길어지므로 옛 사람들은 태양이 기운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를 축하하고, 중국의 주(周) 나라에서는 동지를 설날로 삼았다. 그러나 설날이 동지 후 둘째 달(오늘날 음력 정월) 초하루로 정착되면서 대신 동지는 ‘아세(亞歲·제2의 설)’가 되었고, ‘작은설’, ‘아찬설’, ‘아치설’, ‘까치설’ 등으로 불려왔다.

동지는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햇볕을 주는 태양이 복원되는 시점이지만 대지와 대기가 차져서 이때부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무렵에 흔히 ‘동지한파’라는 강추위가 오고 평균 기온이 영도 이하로 내려간다. 옛적에는 이러한 때에 딸기 같은 것이 있을 수 없었기에 ‘동지 때 개딸기’란 속담도 있는데 이는 철이 지나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을 바란다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영국 시인 셸리(P. B. Shelley)는 ‘겨울이 오면, 봄이 멀 수 있으랴’라고 말했지만, 사실 이때부터 춥고 지루한 엄동설한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에 절식으로 나이 수대로 새알심을 넣은 팥죽을 먹는 풍습이 있는데 시원한 동치미와 동태국을 곁들이기도 한다. 동짓날 팥죽을 쑤어 집 곳곳에 뿌리거나 방, 마루, 광, 헛간, 우물, 장독대 등에 한 그릇씩 떠놓고 가족과 이웃 간에 나누어 먹는 풍습은 귀신과 액운을 쫓는다는 토속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팥죽은 매우 상징적인 음식이다. 검붉은 색의 팥죽은 밤을 그리고 하얀색의 새알심은 해를 상징하는데 새알심을 하나 먹는 것은 새로운 해를 맞는 것이기도 하고 한 살을 더 먹는 것이기도 함을 상징한다.

겨울의 제철 생선으로는 한류성 회유어족인 명태와 대구를 꼽을 수 있다. 과거 동지 전후 특히 동짓달 보름께에 북쪽으로부터 함경도 앞바다로 몰려드는 명태의 떼를 ‘동지받이’라고 불렀는데 볼이 붉고 등이 넓으며 알배기가 많았다고 한다. 대구는 명태와 함께 대구과에 속하기 때문에 명태와 비슷한 모양이나 훨씬 더 크고 통통하다. 대구도 동지를 전후로 알을 낳기 위해 북쪽에서 남해로 회유해 오는데 이 무렵부터 거제도와 통영 앞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