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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봄을 준비해온 잎눈과 꽃눈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봄을 준비해온 잎눈과 꽃눈

기사승인 2022. 02. 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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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자연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무심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관심 있는 눈에는 겨울나무의 가지 끝에는 잎눈과 꽃눈이 불거져 있는 것이 보인다. 대체로 잎눈은 길고 뾰족한 데 반해 꽃눈은 둥글고 뭉툭하다. 대부분의 잎눈이나 꽃눈은 매우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고 보면 초겨울에도 꽃눈이나 잎눈이 가지 끝에 무수히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꽃눈이나 잎눈이 아무리 작다 해도 이 무렵에는 정상적인 눈에는 다 잘 보일 만큼은 커 있다. 목련은 꽃이 큰 만큼 털에 둘러싸여 뭉툭한 붓 모양의 회색 꽃눈이, 은행나무는 통통하고 길쭉한 잎눈이 상당히 커서 눈에 더 잘 띈다. 그것들은 자랄 대로 자라서 관심을 가지고 보면 얼마든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이나 그 변화에 관심이 없으면 혹 나뭇가지 끝을 쳐다보더라도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주목하지 못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잎눈은 대체로 길쭉하고 꽃눈보다 작다. 이에 비해 꽃눈은 대체로 둥글고 뭉툭하며 잎눈보다 크다. 2월 중순 무렵부터는 시절의 변화에 좀 둔감한 사람의 눈에도 둥근 꽃눈이나 길쭉한 잎눈이 툭툭 불거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잎눈과 꽃눈이 더욱 크게 부풀기 시작하여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 버드나무 등의 꽃눈은 3월 중순경에 벙글기 시작한다.

툭툭 불거진 꽃눈과 잎눈의 존재는 겨울도 끝나고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확실한 고지다. 곧 벙글 잎눈과 꽃눈은 봄의 내도를 알리는 확고한 봄의 전령사인 것이다. 이들은 혹한을 견디며 조금씩 커왔다. 따라서 잎눈과 꽃눈이 곧 벙글 만큼 툭툭 불거진 모습에서 이미 봄이 성큼 다가왔음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이때 흔히 늦추위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아무리 맹렬하다 해도 그것은 곧 피어날 꽃과 잎을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불과하며 조만간 언제 그랬냐 싶게 그 매서움이 사그라진다.

식물도 겨울잠을 잔다고 말한다. 사실 나무들은 월동대책으로 겨울에 얼어터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늦가을에 잎들에게 수액을 공급하지 않아 모든 잎들이 조락하게 한다. 그래서 활엽수는 겨울 동안 앙상하게 헐벗은 나목으로 겨울을 난다. 이때 나무들은 가지로 수액을 최소한으로만 보낸다. 그렇다고 나무들이 겨울 동안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무는 겨울 내내 다음 봄에 소생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그것은 바로 잎눈과 꽃눈을 분화시키고 봄이 가까우면 부쩍 키우는 일이다. 겨울 동안 이렇게 준비를 해왔기에 봄이 되면 나무는 새잎들과 새꽃들을 차질 없이 피워낼 수 있게 된다.

나무가 새봄에 소생의 작업으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새잎과 꽃을 피우는 일이다. 나무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씨앗을 얻기 위해 즉 종족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꽃을 피워야 한다. 나무는 또 자신에게 양분을 공급하여 스스로 성장함으로써 개체를 유지하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키움으로써 자손을 퍼뜨리기 위하여 반드시 잎을 피워내야 한다. 이처럼 나무는 자신의 성장과 종족의 유지를 위한 준비 작업을 겨울 동안에 말 없이 수행하는 것이다. 나무는 겨울 동안 성장은 멈추지만 그사이에 잎눈과 꽃눈을 키우고 분화시킴으로써 새봄에 소생하여 다시 성장하고 열매 맺을 준비를 다져놓는 것이다.

보잘 것 없는 꽃눈들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피고 열매가 맺고 씨앗이 커서 후손을 퍼뜨린다. 또 조그만 잎눈들에서 잎들이 피고 커서 나무에 양분을 제공하고 나무를 성장시키고 열매를 키우고 동물들에게 그늘을 마련해 준다. 이는 사소한 꽃눈과 잎눈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그 결과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봄이 되면 새로운 꽃과 잎으로 새 세상, 새 우주가 열린다. 이 경이롭고 위대한 일이 추위를 견디며 가꾸고 준비해온 아주 조그만 꽃눈과 잎눈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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