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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어수선한 봄바람

[이효성의 자연에세이] 어수선한 봄바람

기사승인 2022. 03. 2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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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투데이 주필
이효성의 자연 에세이 최종 컷
한반도에서 봄은 바람이 가장 잦은 계절이다. 그 탓에 봄은 어수선하다. 사실 봄처럼 바람이 많이 부는 철도 없을 것이다. 특히 3월과 4월은 바람이 더 자주 부는 계절이다. 봄바람은 여름과 초가을의 태풍이나 겨울의 삭풍처럼 강력한 바람은 아니고 잔바람이지만 ‘봄바람’이라는 별도의 단어가 존재할 정도로 그 부는 빈도수가 많다. 봄바람은 때로는 훈풍으로 봄을 몰고 와 춘심을 자극하고, 때로는 찬 바람으로 추위를 몰고 와 떨게 하는 변덕스러운 바람이다.

한반도는 몬순 즉 계절풍이 부는 지역이다. 여름에는 훈풍으로 흔히 불리는 남동계절풍이, 그리고 겨울에는 삭풍으로 흔히 불리는 북서계절풍이 분다. 한반도 겨울의 추위는 낮은 온도뿐만 아니라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인 북서계절풍에도 크게 좌우되고, 여름의 더위는 높은 온도뿐만 아니라 북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더운 바람인 남동계절풍에도 크게 좌우된다. 그런데 봄은 이 두 계절풍의 교체기다. 봄 동안에 전체적으로 북태평양 고기압이 밀려오면서 시베리아 기단이 물러가게 된다. 말하자면, 봄은 겨울의 북서계절풍이 여름의 남동계절풍으로 바뀌어가는 계절풍의 교체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봄에는 기본적으로 남녘에서 남동계절풍 즉 훈풍이라는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래서 국어사전에도 봄바람은 “봄에 부는 따뜻한 바람”으로 되어 있다. 춘분에는 동지보다 2시간 반 이상 낮이 길어진 탓에 일조량이 늘어나 온도가 오르기도 하지만 남쪽에서 불어오는 이 훈풍 덕에 봄에는 날씨가 더 따뜻해진다. 우리는 그 훈풍으로 봄이 오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박인환의 시구처럼, “눈을 뜨면 남방의 향기가 가슴팍으로 스며든다”며, 또는 김동환의 시구처럼, “산 넘어 남촌에는 누가 살 길래 /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라며, 봄바람을 반기게 된다. 봄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을 타고 오기에 더 반가운 존재인 것이다.

그렇다고 봄바람이 언제나 남쪽에서 불어오는 훈풍만은 아니다. 삭풍이 물러감과 훈풍의 밀려옴이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기단이 계속 물러가기만 하고 북태평양 고기압이 계속 몰려오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물러가던 삭풍이 때로는 다시 몰려오기도 하고 그에 따라 밀려오던 훈풍이 주춤하거나 후퇴하기도 한다. 이처럼 봄이 되어 물러가던 시베리아 기단이 일시적일망정 때로 다시 몰려오기 때문이 나타나는 일시적인 추위를 꽃샘추위라고 부른다. 이때는 매우 찬 봄바람이 불어닥치게 된다.

그래서 봄바람은 “따뜻한 바람”이라는 정의에도 불구하고 “봄바람에 여우가 눈물 흘린다”거나 “봄바람에 죽은 노인”이라거나 “봄바람은 품으로 기어든다”거나 “봄바람은 기생첩이다”라는 등의 봄바람의 싸늘하게 몸으로 파고드는 드센 성질을 나타내는 속담들이 생겼을 것이다. 그렇다고 봄추위가 한겨울의 삭풍처럼 혹독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봄추위는 일시적으론 대단할 수 있어도 오래 가지는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 속담은 언뜻 보기에 대단한 것 같아도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봄추위와 노인 건강”이라는 말로 일컫는다.

봄에는 훈풍도 불고 삭풍도 불지만, 이들이 뒤섞여 함께 부는 듯한 어지러운 바람이 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에 따라 날씨도 어수선하고 을씨년스러운 경우가 많다. 그런 어지러운 봄바람은 날씨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조차 싱숭생숭하고 들뜨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 속담은 “봄바람은 처녀바람”이라 말하지만, 그 어지러운 봄바람에 마음이 들뜨고 설레는 이가 어디 젊은 처자(處子)뿐이겠는가. 봄바람이 남녀노소를 가려 부는 것은 아니다.

봄에는 훈풍인지 삭풍인지 알 수 없는 바람이 어지럽게 불어댄다. 그런 봄바람에 잎도 없는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흔들리고, 그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종잡을 수 없이 흔들린다. 특히 길게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가 휘휘 흔들리는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더 혼란스럽게 흔들어댄다. 봄은 이들 봄바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들뜨고 설레게 만드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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