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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현 칼럼] 정전협정 70주년, 유엔군사령부(UNC)를 생각한다

[장광현 칼럼] 정전협정 70주년, 유엔군사령부(UNC)를 생각한다

기사승인 2023. 07. 2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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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현 아시아투데이 부사장
북한이 기습남침을 감행한 1950년 6월 25일, 국제연합(UN)은 북한의 무력 공격을 심각한 평화 파괴 행위로 단정하고 미국의 요청에 따라 즉각 안보리를 소집했다. 남침 당일 안보리 결의 제82호(S/1501)를 채택하고 "북한이 적대행위를 즉각 중단하고 38도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북한이 이를 묵살하자 이틀 뒤인 6월 27일 제83호(S/1511)를 채택하여 "국제평화와 안전 회복을 위해 유엔 회원국이 한국에 필요한 원조를 할 것"을 권고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세계평화를 유지하고자 집단안보를 기치로 내건 UN이 유엔헌장에 따라 창립 5년 만에 최초로 '집단안보'를 발동한 것이다. 6월 27일부터 미군을 비롯한 유엔 회원국의 군사적 참여가 시작되자 UN은 7월 7일 안보리 결의 제84호(S/1588)를 채택하고, 이를 근거로 1950년 7월 24일 미(美) 극동군사령부를 모체로 하여 유엔군사령부(UNC, 이하 유엔사)를 창설했다. 3년 동안 참전한 유엔군은 모두 194만여 명으로, 그중 전사자 4만669명을 비롯한 14만8900여 명의 값진 희생에 힘입어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

돌이켜 보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위기에 처한 한국이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한 것은 한마디로 UN과 유엔사가 만들어 낸 기적 그 자체였다. 첫 번째 기적은 북한이 남침을 감행하자 소련의 팽창과 제3차 세계대전 발발을 우려한 미국이 애치슨 라인(Acheson Line) 밖에 있던 한반도 사태에 즉각 개입한 점이다. 한반도가 처한 위급한 상황에 관한 주한 미국대사 무초(John J. Mucho)의 보고가 애치슨 국무장관을 거쳐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에게까지 일사불란하게 보고됐으며, 이를 근거로 미국이 발 빠르게 UN을 움직일 수 있었다.

두 번째 기적은 UN이 창립 초창기임에도 불구하고, '집단안보' 차원에서 한반도 사태에 신속히 개입했다는 점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산물인 국제연맹(LN)과는 달리, UN은 국제평화 유지를 위해 군사력 동원이 가능했고, 한국이 첫 수혜국으로 택함을 받은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 기적은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 당시 상임이사국이었던 소련의 불참이 기권으로 처리되면서 유엔사 창설에 결정적인 행운으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모택동(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 장개석 군대를 몰아내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했지만, UN이 새로운 중국 대표로 인정하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은 소련이 안보리 참석을 보이콧하면서 '기권'으로 처리된 것이다. 만약 그때 소련이 안보리에 참석하여 거부권을 행사했다면 유엔사는 끝내 창설되지 못했을 것이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70년이 지난 지금도 유엔사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이라는 기적을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첫째, 유엔사는 평시 정전협정 관리를 통해 한반도 위기관리에 힘쓰고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난 70년 동안 북한이 자행한 정전협정 위반 건수는 무려 42만여 건에 이르며, 그중 서해교전(2002)이나 천안함 공격(2011), 연평도 포격(2011)과 같은 고강도 도발만 해도 260여 건이 넘는다. 유엔사는 북한이 크고 작은 도발을 자행할 때마다 매번 객관적 입장에서 현장 조사를 하고, 대(對)북한 군사적 대화 통로를 유지함으로써 위기 완화 및 확전 방지에 성공했다. 

둘째, 정전협정 체결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에 잔류함으로써 한국은 안보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었으며, 이에 힘입어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자 모범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다. 

셋째, 유엔사는 70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일과 때를 같이하여 전투 병력을 파병했던 16개국 대표들이 워싱턴에서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 시 다시 참전할 것임"을 결의했던 '워싱턴 선언(1953년 7월 27일)'에 근거하여 오늘날까지 한국에 머물고 있으며, 유사시 유엔사 회원국들의 '전력 제공'에 차질이 없도록 상시 만반의 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처럼 유엔사는 평시에는 한반도에서 긴장 완화와 전쟁 억지에 기여하지만, 유사시에는 한미연합사가 필요로 하는 전력을 창출하여 제공함으로써 한미 연합작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설명한 긍정적인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유엔사가 걸어온 여정은 순탄치 못했다.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 진영이 줄곧 유엔사의 법적 지위를 부정하고 있는 가운데, 이에 편승한 북한은 1991년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로 임명한 것을 트집 삼아 노골적인 유엔사 해체 공세를 펼쳐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유엔사는 새로운 양상의 위협에 직면했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 내에서 북한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일부 세력의 유엔사 폄훼 및 해체 주장, 그리고 유엔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이다. 한국의 국방력이 강화되면서 얻은 자신감이 자주국방에 대한 열망을 부추기고, 민주화 열풍에 무임승차한 세력들이 표출하는 비현실적인 위장평화 공세가 유엔사 존재를 위협하고 있다. 특히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유엔사의 존재감은 더욱 약해졌으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연계되어 '종전선언을 성사하기 위한 희생제물'로 내몰리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만약 한반도에 유엔사가 없는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안보에 어떤 영향을 초래할 것인가? 첫째, 비무장지대(DMZ)나 해상분계선(NLL)상에서 남북 간 상호 충돌이나 일방에 의해 무력 도발이 발생할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조사가 불가하며, 이를 중재할 수 있는 군사적 대화 통로가 상실됨으로써 위기관리가 어려워 확전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둘째, 유엔사가 해체되면 주일 유엔사 후방 기지를 유지할 명분이 약해져 한반도 유사시 전력제공은 물론 한반도에서 작전 중인 회원국에 대한 전투근무지원이 제한됨으로써 전쟁 수행에 차질을 빚게 된다. 

셋째, 한반도에서 전쟁이 재발하더라도 한국에 전투병력이나 장비 및 물자를 지원하기 위한 유엔안보리 결의 채택은 아마도 불가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한과 정치·군사적으로 우호동맹 관계에 있는 중국과 러시아가 찬성표를 던질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이들 두 나라의 '나쁜 공조'를 충분히 엿보았다.

운 좋게도 한국은 지구상에서 UN으로부터 집단안보 혜택을 받은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나라이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UN이 힘을 합쳐 다시 세운 나라이면서, 지금도 유엔안보리가 승인한 유엔사가 남아 한반도 평화와 한국방위를 뒷받침하고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유엔사는 유엔안보리 결의에 근거하여 오직 대한민국만을 위해 특화된 '선물 같은 존재'로서,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활동 중인 여타 유엔평화유지군(PKO)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조직이다. 

이런 유엔사를 시중의 보험상품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국제사회가 오로지 대한민국만을 위해 특화하여 출시한 맞춤형 특별 안전보장보험'이라 할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1년 5개월째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보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산물인 한미연합사와 유사시 전투병력과 장비·물자를 제공하게 될 유엔사의 소중함이 더욱 커졌다. 

점점 더해져 가는 북한 핵 위협 등 안보 불안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 스스로 유엔사를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한반도에 진정하고 공고한 평화가 도래할 때까지 유엔사가 이 땅에 공존하면서 그 본연의 임무와 기능을 안보상황에 맞게 최적화해 나가는 전략적 혜안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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