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투데이 로고
[장광현 안보칼럼] 한반도 평화법안, H.R.1369의 오류와 함정

[장광현 안보칼럼] 한반도 평화법안, H.R.1369의 오류와 함정

기사승인 2023. 09. 07. 18:27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링크
  • 주소복사
  • 기사듣기실행 기사듣기중지
  • 글자사이즈
  • 기사프린트
20230726001520516_1690361038_1
장광현 아시아투데이 부사장
미국 연방하원의 브레드 셔먼을 비롯한 일부 하원의원들이 올해 3월 '한반도 평화법안(H.R.1369)'을 발의하면서 미국 내 뜨거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법안은 2021년 5월에 한 차례 발의되었다가 소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되었던 H.R.3446의 제2탄 격이다. H.R.1369에는 '한국전쟁 종식'을 전제로 미국과 북한 간의 종전선언 및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북한 여행제한조치 해제, 북미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담고 있어 내용 면에서는 H.R.3446과 별반 차이가 없다.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 법안이 정식으로 미 의회를 통과한다면 단순 권고가 아닌 법률적 효력을 지니게 됨으로써 종전선언을 포함한 구체적인 실행 조치를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구속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할 만한 일이다.

미 의회가 발벗고 나서서 한반도 평화를 모색한다는데 한국이 굳이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만, H.R.1369에 담긴 내용을 살펴보면 많은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H.R.1369는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담지 못하고 있어 주권국인 한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 법안을 발의한 미 하원의원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 있지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평화 무드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핵무기를 고도화·정밀화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면서도, "한미동맹이 북한 비핵화를 관철하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이중적 견해를 보였다. 게다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전면적인 제재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북한 지옥이 더욱 얼어붙길 바라는 것'과 같은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입장이다. '진정한 평화'란 말 그대로 전쟁 위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작금의 한반도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북한은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며, 핵무력 증강과 군사정찰위성 확보 시도 등 군사무력 확보에 집착하고 있다.

둘째, H.R.1369를 발의한 의원들이 한반도 평화에 대한 미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어 자칫 한미동맹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의 입장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수준의 북한 비핵화'를 비롯한 전쟁위협이 제거되기 전에는 절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에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한국 정부 역시 똑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H.R.1369는 한미 양국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한마디로 '종전'과 '선언'의 인과관계를 작위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즉 '선언'을 통해 전쟁이 끝나는 게 아니라, '전쟁 위협'이 완전히 사라질 때 비로소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도외시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H.R.1369가 미 의회를 통과할 경우 한국 내에서 섣부른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논의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며, 이는 어떤 형태로든 유엔군사령부와 주한미군의 거취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북한과 우호동맹관계에 있는 러시아, 중국과 근접하고 있는 데다, 더욱이 그들 모두가 하나같이 핵으로 무장하고 있는 군사적 강국이라는 점에서 늘 안보를 최우선 가치로 둘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한 동맹인 미국은 한국으로부터 5805해리(1만751㎞)나 떨어져 있어 한반도에 위기가 발생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즉각적인 개입이 제한된다. 한국이 안고 있는 지정학적인 안보 취약성을 일거에 해소해 주는 존재가 바로 주한미군과 유엔군사령부인데, 그간의 북한 행태로 보아 섣부른 종전선언은 이들의 거취에 압박을 가하는 명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비록 H.R.1369가 H.R.3446과는 달리 '전쟁이 종식되더라도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고, 앤디 킴(Andy Kim) 의원이 "한반도 평화법안(H.R.1369)이 주한미군의 역할을 오히려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두둔하는 발언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눈속임일 뿐이다. 더욱이 미국과 북한이 상호 간 적대관계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락사무소를 설치하자는 것 또한 앞뒤 논리가 맞지 않은 모순이다. 북한이 호전성을 버리지 않는 상황에서 만약 미국이 북한과 준(準)외교관계를 맺는다면 결과적으로 북한만 이롭게 해줄 것이다.

결론적으로, H.R.1369는 한반도 문제의 핵심 당사자인 한국 정부와 한국 국민의 입장은 무시한 채 오로지 미국 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만을 염두에 둔 포퓰리즘이다. 북한 스스로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와 함께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책임을 이행하지 않는 한, 전쟁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에 응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북한이 일시 눈속임으로 평화협정 체결에 임한 후 그들이 원하는 '결정적 시기'에 돌연 협정을 파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돌이켜 '파리평화협정(1973)'이나 '이집트-이스라엘 평화협정(1979)', '이스라엘-요르단 평화협정(1994)' 등 숱하게 맺어진 평화협정들이 정치적 문서 행위만으로는 결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전례를 남겼음에 유의해야 한다. 핵과 미사일 등 현존하는 군사적 위협을 내버려둔 채 단지 '평화의 씨앗'을 뿌린다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실험에 가까운 평화에 대한 희망만을 담고 있는 H.R.1369는 즉각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아울러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들먹이며, 북한의 거짓평화공세에 맹목적으로 동조하는 국내외 좌파들의 준동에도 속지 말아야 한다.
후원하기 기사제보

ⓒ아시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