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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석 논설위원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온통 조사권과 기소권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으로 국회가 파행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재발 방지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일 것이다. 과거 서해 페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가 터지면, 사익(self-interest) 추구가 비난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설계변경이나 과적과 같은 행위들이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사익 추구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로부터 사익 추구의 규제가 최선의 대책이라는 결론이 유도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떤 환경 아래에서 사익 추구를 허용하느냐가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탈이 가능한 상황에서라면 사익 추구는 분명 다른 사람의 희생을 수반할 가능성이 높다. 법적으로 독점을 허용하면, 다른 선사와 경쟁을 할 필요가 없기에 소비자들에게 더 높은 가격을 부과하거나 품질이 낮은 서비스를 제공해도 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법적 약탈이 허용되는 셈이다. 지금처럼 노선을 독점시키는 동시에 운임을 규제하는 상태에서는, 선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혹은 뇌물을 주고 과적금지 규정을 어겨 이득을 남기려할 수 있다. 가격이 규제되어 더 높은 운임을 받을 수 없다면, 안전에 대한 투자도 주저할 것이다. 어쩌면 많은 배들이 세월호처럼 침몰되지 않고 운행되고 있지만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일 수 있다.
그러나 자유로운 경쟁이 허용되는 상황에서 자발적 거래를 통해 각자가 사익을 추구하는 경우에는 거래는 상대방의 희생이 아닌 상호혜택이 전제될 때 가능해진다. 이런 경우에는 남을 이롭게 해주지 않고서는 사적 이익의 추구가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안전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선사의 배에 탈 것이며, 그런 배를 탈 때 더 높은 운임을 지불할 의사가 있다. 우리는 사적 이익의 추구 자체를 금지해야할지, 아니면 호혜적인 환경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이에 대한 판단에 도움이 되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호주가 영국의 식민지일 때 영국의 죄수를 호주로 보내는 정책이 추진되었다. 죄수감시에 드는 비용을 없애는 동시에 호주를 개발할 수 있고, 또 죄수로서도 감옥보다는 넓은 섬에서의 삶이 낫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당시의 항해술로는 호주까지의 항해에 오랜 시간이 걸렸고 대부분의 죄수들이 호주에 도착하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에 많은 규제정책들, 예컨대, 배에 충분한 식량과 의약품을 싣도록 하고 이를 어길 때 강한 벌칙을 가하는 규제들이 가해졌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규제가 준수되는지 감시하기 어렵고, 감시가 가능해도 뇌물을 주거나 형식적으로 규제를 지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성공한 정책이 나왔다. 생존해서 호주에 도착하는 죄수의 숫자에 따라 선장에게 보상하자 선장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죄수들의 건강을 돌보았다.
물론 선사가 승객의 안전을 중시할수록 자신에게도 이득이 되는 환경을 조성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효과적인 구조 활동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해양경찰의 활동과 같은 공공부문에서는 더 많은 이윤으로 더 나은 구조 활동을 유도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더 나은 매뉴얼의 개발을 비롯해 민간 구조경험의 활용, 정기적 훈련 등에 대한 훌륭한 규정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정기적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수정해 가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이제 국회파행의 원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의 대형 참사를 막는 제도 확립에 지혜를 모으는 분수령이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