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1일(현지시간) HSBC 탈세 스캔들과 관련해 “영국 국세청 최고책임자가 제공받은 탈세 관련 자료를 무시하고 조세회피 용의자들에게서 세금을 제대로 걷지 못했다는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영국 가디언도 이날 HSBC 스위스 지사 관련 자료의 유출로 영국 정부의 세금감면제도가 악용되고 있는 실태가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지난 8일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폭로로 HSBC 스위스 지사가 203개국 고객 10만명의 자금 1000억달러(약109조7000억원)를 관리하며 탈세와 자산은닉을 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6개국 이상이 동시다발적으로 HSBC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미국 법무부는 이미 HSBC의 자국 고객 탈세를 도운 혐의에 더해 환율 조작에 가담했는지 여부도 조사하고 있으며 프랑스 사법 당국도 유출자료에 관한 추가 조사에 착수했다.
특히 영국에서는 정부의 잘못된 조세정책과 국세청의 관리감독 부실로 인해 성실한 납세자들이 피해를 봤다는 성난 여론이 거세다.
마거릿 호지 하원 공공회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의회 의원들은 이날 의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국세청이 조세회피 용의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두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거세게 비판했다.
의회의원들은 특히 린 호머 국세청장이 지난 2008년과 2010년, 2013년에도 재차 프랑스 당국과 언론 등을 통해 관련 정보를 보고받고도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국세청을 필두로 정부가 부유층의 조세회피를 방관했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투명한 세금정책을 보장하기 위해 이 문제를 반드시 G8정상회의 최우선 의제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국세청(HMRC)은 장기 체류 외국인의 국외 소득세 부과를 면제해주는 송금주의 과세제(Non-Dom)를 실행하고 있다.
이 제도를 이용해 영국에 거주하는 부유층은 어느 나라에도 자산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으며 이런 행위를 대를 이어 물려주기까지 했다.
이러한 상속자들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시민권을 가지고 있기까지 해도 일반 영국시민들보다 훨씬 세금을 적게 낼 수 있었다.
가디언은 이번 자료 유출로 인해 해외투자자 유치를 위한 이 과세제가 악용되면서 영국은 물론 타 국가들의 세수까지 박탈당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이러한 송금주의 과세제의 혜택을 받은 이들이 토니 블레어 총리 재직 시절을 포함한 1997~2007년 동안 6만 7600명에서 13만 7000명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보도에 따르면 HSBC 스위스 지사 측은 이러한 개인들에게 접근해 어떻게 합법적으로 탈세를 해야 할지 방법을 알려주며 선동하기까지 했다.
한편 HSBC의 비밀계좌를 운용하는 이들 중에는 마약 밀매상이나 무기상, 테러단체 자금책 뿐만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과 왕실 인물이 다수 포함돼 더욱 충격을 줬다.
이날 가디언은 영국 보수당인 토리당은 HSBC 스위스 지사에 계좌를 가지고 있는 인사들로부터 500만 파운드(약 84억4000만원) 이상의 자금을 기부받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HSBC의 고객 명단에는 잭 골드스미스 토리당 의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 당대표 시절 토리당 재무담당이었던 스탠리 핑크 경, 독일계 자동차 산업 상속자로 토리당의 주요 기부자인 게오르그 폰 오펠 등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가디언은 지난 10일에는 “HSBC의 스위스PB사업부 고객 명단에 클린턴 재단 후원자 7명이 이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논란에 휩싸였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7명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가 설립한 자선재단인 클린턴재단에 8100만 달러(약 888억원)를 후원해 클린턴재단이 검은 돈의 수혜를 받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밖에도 탈세스캔들에 연루된 HSBC 스위스 지사에 비밀계좌를 만든 인물 명단에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 모로코 국왕 모하메드 6세, 바레인 살만 빈 하마다 알 칼리파 왕자, 사우디 왕족 수십 명이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