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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 역사 한 페이지] 친구에게 부인 뺏긴 덩샤오핑 결혼생활도 파란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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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기자

승인 : 2015. 04. 1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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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세 번이나 결혼
개혁, 개방 정책 추진을 통해 공산국가인 중국을 지구촌이 깜짝 놀랄 슈퍼 경제 대국으로 만든 주역인 덩샤오핑(鄧小平)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이라는 표현이 딱 적절하다. 세 번 실각한 후 재기에 성공한 정치 인생의 역정을 살펴보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는 끝이 좋기는 했으나 정치적으로만 불후하지 않았다. 결혼 생활 역시 평탄하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 총 세 번 결혼했다. 결혼과 이혼이 다반사인 지금도 흔치 않을 기록이 아닌가 보인다. 물론 평균 결혼 횟수가 5회 이상인 중국의 초창기 당 지도자들이나 여성 편력에 관한 한 단연 독보적인 마오쩌둥(毛澤東)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장시위안
덩샤오핑의 첫 번째 부인 장시위안./제공=검색엔진 바이두(百度).
그의 첫 번째 부인은 널리 알려진 대로 1926년 소련 모스크바 중산(中山)대학 유학 중 만나 알게 된 장시위안(張錫瑗)이다. 결혼은 2년 후인 28년 그가 24세, 장이 21세 때 상하이(上海)에서 했다. 젊어 만난 만큼 사이가 좋았다. 게다가 장은 대단한 미인에 매력이 넘치는 여성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아주 짧게 끝났다. 결혼 2년 만에 그녀가 산후풍으로 세상을 떠난 것. 게다가 어렵게 얻은 딸도 이때 유명을 달리 했다.

진웨이잉
덩의 두 번째 부인 진웨이잉./제공=검색엔진 바이두.
한꺼번에 부인과 딸을 잃었으니 그의 상심은 상상을 불허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주의 혁명가답지 않게 1년 동안 방황하기도 했다. 이때 나타난 여인이 바로 그와 동갑인 진웨잉(金劉映)이었다. 31년에는 결혼식도 올렸다. 두 사람의 동거 생활 역시 각자의 혁명 활동 탓에 길지 않았다. 더구나 33년 5월에는 덩이 사상 문제로 비판을 받은 다음 당 중앙의 구류소에 수감되는 횡액에도 직면, 아예 생이별을 해야 했다. 결국 진은 이해 겨울 그의 곁을 떠났다.

문제는 그녀가 이듬해 소비에트 중앙 소재지인 장시(江西)성 루이진(瑞金)에서 덩의 절친한 친구인 프랑스 유학 동기생 리웨이한(李維漢)과 결혼했다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덩의 입장에서는 친구와 부인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볼 수 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볼 때도 이런 결혼은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라고 해도 좋다. 실제로 덩도 이때 상상을 초월하는 실의에 빠졌다고 한다. 진과 리는 친구와 전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잘 살았다. 2년 후에는 나중 당 중앙 정치국에 진입할 정도로 출세하는 리톄잉(李鐵映·79)도 낳았다.

줘린
덩과 세 번째 부인 줘린./제공=검색엔진 바이두.
덩은 그러나 오뚜기라는 별명처럼 쓰러지지 않았다. 6년 후인 39년 12세 연하인 줘린(卓琳)과 결혼, 가정 생활에서도 2전3기의 드라마를 쓴 것이다. 이후 그녀와 60여 년 가까이 해로하고 2남3녀를 낳았다.

이 정도에서 기구하다고 해도 좋은 그의 러브 스토리가 끝나면 재미가 없다. 실제로도 재미 없게 끝나지도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첫 번째 부인에게 평생 지극정성을 다했다. 나중에는 그녀의 시신을 수습, 상하이의 룽화(龍華)혁명공원에 안장까지 하는 배려를 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자녀들에게 명절 때면 찾아가 성묘를 해줄 것도 당부했다. 자녀들은 그의 이 부탁을 지금까지 지키고도 있다.

리톄잉
덩의 두 번째 부인 진웨이잉의 아들인 리톄잉. 어머니 전 남편인 덩의 배려로 정치적 출세를 했다.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에 세워진 어머니 동상 앞에 서 있다./제공=검색엔진 바이두.
자신을 배신한 두 번째 부인에게도 그랬다. 무엇보다 그녀의 아들 리톄잉을 지극정성으로 챙겼다. 3전4기 끝에 정권을 장악한 다음에는 아들 이상으로 팍팍 밀어줬다. 리는 부모의 친구이자 전 남편인 덩의 이런 배려 덕에 정치국에까지 진출하는 출세를 했다. 심지어 한때는 총서기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덩의 아들일지 모른다는 소문이 지금까지 나도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싶다. 당연히 친아들일 수는 없다.

덩은 지금도 오뚜기, 작은 거인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의 기구한 결혼 생활과 전 부인들에게 대한 대인배의 풍모로 보면 진짜 별명은 잘 지은 듯하다.
홍순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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