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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술에 취해 흉기로 아내를 협박하고 성폭행한 4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했다”며 이 남성에게 40시간씩 성폭력과 알코올 치료 수강을 받으라고 명령했다.
올해 6월, 옛 직장동료의 여자 친구를 성폭행한 30대 남성 또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이 남성은 술을 마신 뒤 모텔 옆방에서 자고 있던 직장동료의 여자 친구를 자신의 객실로 유인해 성폭행했지만,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후회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실형을 면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애인의 딸을 10시간 동안 감금하고 성폭행한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마찬가지로 피의자가 음주 상태였으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술 취한 여성을 성폭행하려한 고교 교사도, 술자리에 합석한 10대를 성폭행하고 나체 사진까지 찍은 대학생들도, 회식이 끝난 후 회사 후배를 성폭행하려한 30대 남성 등도 범행 당시 술에 취해 있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최근 80대 치매 할머니를 폭행하고 중요 부위에 돌을 쑤셔 넣은 50대 남성, 찜질방에서 5살 어린이 등 6명을 성추행한 현역 군인, 지인의 아내를 추행한 유명 개그우먼의 남편 등도 하나같이 만취 상태였다는 핑계를 댄 것으로 전해졌다.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경우 형을 감경한다는 현행 형법은 1953년 9월 제정됐고, 이에 따라 법원은 가해자가 범행 당시 만취 상태였음이 입증되면 형량을 낮추고 있다.
하지만 2008년 전 국민을 경악케 만든 ‘조두순 사건’ 이후 음주 범죄자에 대한 형을 감경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후 성폭행은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관련법이 개정됐으나, 강행규정이 아닌 탓에 법원의 판결에는 여전히 일관성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앞서 음주 감경을 막기 위한 법 개정안은 2012년에만 7건, 2013년에 2건, 지난해 1건 제출됐다. 이 중 대안이 반영됐다는 이유로 폐기된 3건의 법안을 제외한 7건은 여전히 국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이노근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주취범죄자는 자의로 술에 취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 이들을 보다 감경해 처벌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런 경우에는 심신장애 등을 이유로 한 불벌·감경을 필요적으로 제한하도록 함이 타당하다”고 명시돼 있다.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술이나 약물로 인해 만취·착란·혼미 상태에 빠진 범죄자는 통상 스스로 술, 약물에 의존해 범죄의 성향을 드러내며 살인, 성범죄 등을 범하고 있으므로 이들을 가중처벌할 필요성이 현저하다. 술, 약물에 취하면 상습적으로 범죄성향이 발현되는 자가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그 죄에 정한 형의 단기 및 장기의 2배까지 가중해 처벌해야 한다”고 돼 있다.
조명철 의원 등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음주 폭력에 대한 관대한 처벌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과거에도 만취상태에서 성범죄를 범한 경우 심신 미약 감경을 해주던 기존 양형실무에 대해 커다란 사회적 비판이 있었다”고 밝혔고, 서영교 의원 등도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주취상태와 약물로 인한 범죄의 경우 본인의 의지로 충분히 사전에 자제가 가능한 점을 감안할 때, 이로 인해 형을 감형하는 것은 국민정서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9대 국회 임기 만료가 6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현재, 수많은 법안들이 국회에 계류돼 있는 탓에 음주감경을 제한하는 법안은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조두순 사건 당시처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만한 피해자가 발생한 후에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국회의원들이나 사법당국이 나서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누리꾼들은 온라인상에서 ‘음주감경 제한을 위한 7개 법안 통과’ 서명 운동까지 벌이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달 10일부터 시작된 이 서명 운동에는 10일 현재 3만2000여명이 참여한 상태다.
법조계 내부에서도 비슷한 의견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다. 취중 범죄에 관대한 사법당국의 미온적 태도가 가해자들의 죄의식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더 흉악한 범죄를 야기하는 원인이 된다는 입장이다.
검사 출신 김경진 변호사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면 스스로 조심을 해야 한다. 의사 결정 가능성이 없는 선천적 질환과 알코올을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며 “피의자가 ‘술을 먹어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하면 재판부도 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김 변호사는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양형 기준 형량과 법조인들의 양형 기준 감각에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생각을 바꾸려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기준에 맞춰 대법원의 양형 기준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며 “현안 법안 때문에 바빠 19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이 통과되긴 힘들 것 같지만, 음주감경에 대한 여론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20대 국회에선 법이 바뀔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