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10곳 중 1곳 문닫을 위기…법 재개정으로 과도한 규제 없애야"
|
김명용 한국학점은행평생교육협의회 이사장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서초동 한국IT직업전문학교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도 넘는 규제로 학점은행제 운영기관의 10분의 1가량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다며 정부에 법 개정을 촉구했다.
학점은행제란 정규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일정 기준 이상의 학점을 이수하면 전문 또는 학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평생교육제도다. 학점은행제 운영기관은 직업전문학교나 대학 부설 평생교육원, 기술위주 교육을 실시하는 사설학원 등이다. 학습자는 대학에 진학을 못한 비진학 청소년들이나 취업이나 이직을 하려는 경력단절 여성 등 성인 학습자들이다.
이 제도는 단기간에 학점 이수를 할 수 있어 대학보다 취업을 빨리 할 수 있는 데다 실무중심의 직업교육을 받아 취업이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작년에만 이 제도를 통해 8만2000명이 학위를 취득했으며 시장은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학점은행제 시장은 지난해 정부가 학점은행제의 폐단을 막고자 행정감독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제도를 재정비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앞서 정부는 지난해 9월 ‘학점은행제 등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고 10월 ‘평가인정 학습과정 운영에 관한 규정’을 새로 제정했다.
정부가 법 개정을 추진한 것은 과거 학점은행제 기관이 공금을 횡령하거나 수업체계를 갖추지 못한 대행업체가 학생들을 모집해 원격 교육기관에 30%가량의 수수료를 떼고 팔아넘기는 사건이 적발되면서다.
이러한 규제로 인해 학점은행제 시장의 양적성장에 발목이 잡혔다. 김 이사장은 성장 정체뿐 아니라 시장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정부가 취업중심 학과로 개편하는 대학에 지원금하는 대학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음에도 취업중심 교육과정으로 이뤄진 학점은행제 시장은 오히려 축소시키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정부가 지난해 학점은행제 관련 법률과 시행규칙을 개정하고 새 규정을 만들면서 학습자가 대학으로 오인할 수 있는 학과별 모집을 못하도록 했고 정시나 수시 등의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 이는 학점은행제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규정이다. 학점은행제들은 학습자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직업군으로 학과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뷰티 분야의 경우 미용학과·메이크업아티스트학과·네일아트학과·스킨케어학과 등으로 학과 명칭을 사용하는 이유다.”
-향후 신입생 모집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나
“학점은행제 기관들은 과목별로 신입생을 모집하게 돼 있다. 뷰티 분야의 경우 ‘공중보건학’이라는 과목으로 모집해야 한다. 또 프로그래머나 보안 분야의 취업을 희망하는 학습자들도 ‘C++’ 과목으로 선택해야 하는데, 이를 봐선 언뜻 진로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보통 학습자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 자신이 희망하는 지겁을 먼저 고려하기에 직업명칭을 연사에 하는 학과명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대학과 혼동하는 것을 막으려다 오히려 학습자의 학과 선택에 혼동을 줄 수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
수시·정시 용어는 실업계 고등학교나 대학교 평생교육원, 올해 신설되는 평생교육 단고대학에서도 사용하는데, 학점은행제만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 형평성에도 어긋난다. 학과나 수시·정시용어가 마치 대학의 전유물처럼 규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연계모집도 못하게 했다는데
“학점은행제 기관에서 학위를 받으려면 두 곳의 기관에서 학점을 이수하도록 돼 있다. 때문에 직업전문학교나 기술계 학원들은 다른 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교양과목 수업을 연계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협약을 통한 강의를 듣도록 강요하거나 유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학습자들이 교양과목을 들을 기관은 어디인지, 그곳에서 어떤 과목을 몇 학점을 들어야 할지 일일이 따져야 하는 데다 개인이 별도로 학습설계를 할 경우 한 과목당 수업료가 60~80만원으로 두 배 이상 비싸다.
기관간 협약을 통한다면 많게는 절반까지 학비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기관이 원스톱서비스를 통해 학습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지, 이득을 취하려는 게 아니다. 과거 출결도 대신해 주고 시험도 대신 봐준 사례가 있지만 지금은 근절됐다. 뒤늦게 규제를 하는 것은 뒷북행정이다.”
-규제로 인한 시장 피해 규모는
“이렇게 규제를 이어가다 보면 학점은행제 운영기관의 1/10가량은 문을 닫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학령 인구 감소로 인한 정원미달 사태를 빚고 있는 지방대학과 전문대학은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실정에다 학점은행제 시장도 커져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학습자들에게 인지도가 가장 높은 수도권 대학들은 평생교육원에 학점은행제과정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대학은 정원 제한이 있는 반면, 평생교육원의 학점은행제과정은 정원 외전형으로 뽑는다. 재단의 수익사업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학점은행제 시장은 정부의 규제까지 더해져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최근 교육부가 학점은행제과정을 포함한 평생교육 단과대학을 전국 8개 대학에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을 보면 이번 규제 강화가 직업전문학교와 기술계 학원 등 학점은행제 업체들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과거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관이나 대행업체들은 537개 기관 중에서 극히 소수에 불과하고 선량한 기관 대다수는 대학의 표준교육과정을 준용하고 있는데 모두 규제의 덫을 씌우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규제를 강화하기보다 정부가 4년마다 실시하는 재평가를 통해 편법이나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곳을 걸러내면 된다. 불필요한 규제를 만들어 시장을 도태시키는 것은 정부의 ‘선(先)취업 후(後)진학’ 활성화 정책과도 배치된다. 과도한 규제를 없애고 학점은행제 시장 실정에 맞도록 법을 다시 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