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가 장욱진(1917~1990)의 장녀 장경수 경운박물관장(72)은 24일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장욱진 탄생 100주년 전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회고했다.
“내 라인은 인사동!”이라며 생전에 인사동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며 술을 즐겼던 장욱진의 탄생 100년을 맞아 그가 걸어온 길을 재조명하는 전시 ‘인사동 라인에 서다’가 개막했다.
장 관장은 “아버지가 화가였다는 것을 초등학교 4학년 때 알았다. 기차간 같은, 껌껌하고 긴 방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다”며 “아버지에게는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늘 있었다”고 돌아봤다.
“어머니가 생활 전선에 나서 그 덕분에 교육을 받을 수 있었어요. 아버지는 가장 역할을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해 하셨지요. 우리 형제들은 전부 아버지를 가엽게 여겼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면 늘 아버지 편을 들었어요.”
|
장욱진은 서울대 미대 교수를 6년 만에 그만 두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전기도 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덕소로 갔다.
“교수직을 관두셨을 당시는 모더니즘 등 새로운 미술사조가 들어온 때였어요. 때문에 굉장히 고독한 싸움이었을 거 같아요. 덕소에서 아버지는 그림을 많이 그리지 못하셨어요. ‘가족을 내팽겨치고 가서 왜 그림을 그리지 않느냐’고 제가 툴툴 대기도 했죠. 아마 이때가 아버지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한 시기로 보여요.”
그는 “덕소 시절 그림은 어느 작품을 봐도 눈물이 나온다.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아버지의 덕소 시절 그림 중 특히 ‘어부’(1968년)라는 작품에 관해 언급했다. “아버지가 어두워지면 주무셔서 새벽 두 시에 일어나셨어요. 일어나면 어부와 자기만 깨어 있다고 하셨죠.”
이번 전시에는 장욱진이 불심이 깊었던 아내를 그린 ‘진진묘’(1970년)도 소개된다. 장 관장은 ‘진진묘’에 관련된 일화도 전했다.
“‘다른 화가들은 아내 초상을 많이 그리는데 왜 당신은 안 그리느냐’는 말에 아버지가 그림 작품인데요. 춥고 힘든 환경에서 일주일간 이 작품을 완성하신 아버지가 3개월 간 많이 아프셨어요. 그때 ‘남편과 인연이 끝나려나’는 생각까지 하신 어머니는 이 작품을 가지고 계시지 않으려 하셨죠.”
|
“나는 심플하다”는 그의 말대로 체면과 권위에서 벗어나려 애썼고, 평생을 아이와 어른 모두가 좋아하는 단순한 그림을 그렸다.
장욱진의 평전을 쓰기도 한 김형국 가나문화재단 이사장은 “장욱진의 작품을 파울 클레 그림 같다고 비하하는 이들도 있는데 장욱진 작품에는 민화적 요소와 한국적 풍류정신, 선불교적인 면이 깔려 있다”며 “이런 시각에서 장욱진을 새롭게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7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