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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황병기 “내 음악 세계는 깊은 산골에서 약수 찾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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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18. 01. 31.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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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기 독사진_국립국악관현악단 제공
가야금 명인 황병기의 생전 연주 모습./제공=롯데콘서트홀
31일 세상을 떠난 ‘가야금 명인’ 황병기는 현대 국악의 경계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전쟁 피란 시절인 1951년 가야금을 처음 접했다.

경기중 3학년생이던 그는 친구의 권유로 접한 이 악기의 둥둥 뜨는 소리에 첫눈에 반한 뒤 평생을 함께했다. 이후 전국 국악 콩쿠르에서의 수상 등으로 ‘엘리트 국악 신동’으로 주목받지만,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다. 당시만 해도 국악과가 없었던 데다가 국악으로 먹고살기 어렵다고 생각한 부모의 만류도 극심했다.

그러나 법대 재학 시절에도 그는 가야금을 놓지 않았고, 운명처럼 그가 졸업한 1959년 서울대 국악과가 개설되면서 그는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후 이화여대 교수,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아르코(ARKO) 한국창작음악제’ 추진위원장 등을 지내며 국악계 ‘큰 어른’으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의 예술세계는 1962년 본격적으로 막을 올린다. 1962년 서정주의 시에 곡을 붙인 ‘국화 옆에서’를 선보이며 가야금 연주자로 첫발을 내디딘 뒤 같은 해 한국 최초의 현대 가야금곡으로 꼽히는 ‘숲’을 발표했다.

3년 뒤 그는 ‘숲’과 가야금 산조 등이 담긴 첫 음반 ‘뮤직 프롬 코리아: 더 가야금(Music From Korea: The Kayakeum)’을 미국 하와이에서 발표했다. 이 음반에 대해 미국 평단은 “황병기의 가야금 작품은 정신적인 해독제로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후 국악의 지평을 신라 시대까지 넓힌 ‘침향무’가 담긴 작곡집 ‘침향무’와 신라 고분에서 발견된 페르시아 그릇에서 영감을 받은 ‘비단길’, 초현실주의를 시도한 대표작 ‘미궁’, ‘춘설’ 등을 잇달아 내놨다. 작년에도 신작 가곡 ‘광화문’을 발표하는 등 최근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정제되고 격조 높은 가야금 연주 속에 거리낌 없는 혁신과 실험 정신이 담긴 그의 곡은 가장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학자인 영국 셰필드대 앤드루 킬릭 교수는 “모순을 명상하는 선(禪)의 경지”라고 그의 음악 세계를 극찬했다.

고인 스스로는 “내 음악 세계는 깊은 산골에서 약수를 찾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름에 시원하게 마시는 청량음료가 아니라 첨가물이 하나도 없는 맑은 물, 그것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음악”이라고 평한 바 있다.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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