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은행들은 분조위의 이 결정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키코 사태가 벌어진 지 10년이 훌쩍 지난 만큼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기 때문입니다. 민법상 손해액 청구권 소멸시효는 10년입니다. 키코 사태는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환율이 급등하면서 크게 손실을 본 사건입니다. 은행들은 청구권 소멸시효가 지난 만큼 배상금을 지급한다면 결과적으로 주주들의 이익을 떨어뜨리는 배임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으로 가장 많고, 우리은행 42억원, KDB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입니다. 은행들은 키코 관련 조정안 수용 여부를 검토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통보 시한을 연장해달라고 금감원에 요청했습니다.
현재까지 우리은행만이 이사회을 열고 배상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우리은행이 최근 당국으로부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징계 절차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일찌감치 배상을 결정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은행들은 고민이 더 깊어진 모습입니다.
하나은행의 경우에는 지난달 초 이사회를 열고 키코 배상을 다루는 은행협의체에도 참여하기로 했지만 배상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신한은행도 이달 이사회에서 키코 배상안에 대해 논의하지 못했습니다. 씨티은행의 고민도 큽니다. 한국씨티은행의 모기업은 미국의 씨티그룹입니다. 본사 이사회와의 협의가 필요한데 외국계 주주들은 배임 이슈에 더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금감원은 은행에 고민할 시간을 더 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상 당국도 키코 배상이 결정이 어려운 사안임을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번 조정안 수락의 의미는 단순 배상보다 큽니다. 이 결과를 계기로 분쟁조정을 제기하지 않은 다른 기업들에게도 자율배상을 해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피해기업으로 구성된 키코 공동대책위원회와 금감원도 이번 배상 이후 자율배상으로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눈치입니다. 배상금이 2000억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배상금이 늘어나면 배임 소지도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배임을 권고하는 형국이라고 토로하고 있습니다. 물론 소비자 피해는 판매사에게 적절한 책임을 물게 해 재발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법적 절차를 거쳐 결론까지 나왔던 사안에 대해 다시 책임을 물렸을 때 발생하는 주주들의 피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은행들에 책임만 요구할 게 아니라 적법한 절차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금융당국의 태도도 필요해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