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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반열에 오른 시황제,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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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승인 : 2022. 10. 16.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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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에서 반동의 자식, 다시 최고 지도자로 우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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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과 최근의 시진핑 주석. 왼쪽은 1989년 푸젠성에서 일할 때, 오른쪽은 2019년 식목 행사 때의 모습이다./제공=신화(新華)통신..
16일 막을 올린 중국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의 전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하면서 장기 집권의 기틀을 닦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혁명 1·2세대를 제외한 나머지 전·현직 최고 지도자들 중에서 유독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좌절을 불러올 수도 있었던 역경을 이겨내고 스스로의 힘으로 지금의 자리를 드라마틱하게 쟁취했다는 얘기가 될 듯도 하다.

혁명 2세대 원로로 부총리까지 지낸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은 웬만한 중국인이라면 거의 모두 다 아는 인물로 유명하다. 시 주석에게 붙는 이른바 '태자당(당 최고 원로 자제 그룹)'이라는 금수저 딱지는 따라서 하나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시 주석의 어린 시절은 금수저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사치를 극도로 경계한 아버지의 성격 탓에 일반 노동자의 자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한 것이다. 게다가 나이 10세 때에는 반동분자로 몰린 아버지의 실각으로 가족 전체와 함께 생고생까지 해야 했다.

이어 1969년에는 3년 전에 발발한 문화대혁명(문혁)의 유탄을 맞고 산시(陝西)성 옌안(延安)의 량자허(梁家河)로 하방(下放)되는 운명에도 봉착하지 않으면 안 됐다. 시 주석은 이곳에서 무려 7년 동안이나 동굴에서 자면서 고된 노동을 견뎠다. 그의 인생에 반전의 전기가 도래한 것은 문혁이 끝나기 1년 전인 75년이었다. 불평, 불만 없이 열심히 노동에 매달린 것을 좋게 본 당으로부터 칭화(淸華)대학 입학 허가를 받은 것이다.

이후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허베이(河北)성 정딩(正定)현 부서기를 거쳐 푸젠(福建)성, 상하이(上海)시, 저장(浙江)성 등지에서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성공적인 캐리어를 2007년까지 쌓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최고 지도자 재목으로 주목받지는 못했다. 캐리어와 능력 면에서 당시 라이벌이던 리커창(李克强) 총리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2007년 10월에 열린 당 제17차 대회에서 서열 6위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다. 종신집권으로 가는 길을 당시의 막판 대역전으로 다졌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마오쩌둥 전 주석처럼 될 가능성이 높을 듯하다.
홍순도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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