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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명의 정치국원에서 일약 총리로 벼락 출세를 하게 된 리 서기는 1959년 저장(浙江)성 뤼안(瑞安) 출생으로 어릴 때부터 노동자로 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직후인 1978년에는 별 학력이 없었음에도 운 좋게 저장농업대학 농기계과에 입학, 졸업할 수 있었다.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1983년으로 이때 비로소 현(縣) 위원회 간부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중국사회학통신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공직생활 경력의 대부분을 고향 저장성에서 쌓았다. 2002년에는 40대 초반의 비교적 젊은 나이로 저장성의 대표적 경제도시 원저우(溫州)시 서기를 맡아 승승장구를 예고했다. 이때 그를 눈여겨본 이가 바로 당시 저장성의 시진핑 서기였다. 2004년 자신의 비서실장에 해당하는 성 비서장으로 발탁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연히 리 서기는 시 주석이 집권한 2012년 이후부터 빛의 속도로 출세가도를 달렸다. 2013년 저장성 성장에 오른 것은 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2015년 9월에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을 수행한 것은 둘의 관계로 보면 하나 이상할 것이 없었다. 급기야 2017년에는 정치국 위원으로 선임되면서 외지 정치인들에게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는 철벽 상하이시의 서기에 임명됐다. 시자쥔(習家軍·시 주석 파벌)의 맹장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보인다.
현재 중국의 당정 고위층에는 그 외에도 시 주석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시자쥔 멤버들은 많다. 그와 함께 상무위원이 된 차이치(蔡奇·67) 베이징시 서기를 비롯해 딩쉐샹(丁薛祥·60) 중앙판공청 주임, 리시(李希·65) 광둥(廣東)서 서기들이 자칭, 타칭 시자쥔의 에이스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아깝게 상무위원에서 탈락한 천민얼(陳敏爾·62) 충칭(重慶)시 서기, 정치국원으로 선출되면서 외교 사령탑으로 올라선 왕이(王毅·69) 외교부장, 신임 외교부장으로 유력한 친강(秦剛·57) 주미 대사 등도 거론될 수 있다. 바야흐로 중국 정계에 시자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