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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가장 큰 이변은 누가 뭐래도 7명 정원의 상무위원회 진입이 점쳐졌던 후춘화(胡春華·59) 부총리의 몰락이 아닐까 보인다. 상무위원이 되기는커녕 24명 정원의 정치국 멤버에서도 제외되면서 205명의 중앙위원으로만 겨우 살아남았다면 분명 몰락이라는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한마디로 정치적 위상이 격상과는 거리가 먼 곤두박질을 쳤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중국 정계 정보에 밝은 베이징 소식통의 24일 전언에 따르면 베이징대학 중문과 출신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될 성 부른 나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작 나이 34세 때인 1997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에 등용됐다면 더 이상 설명은 필요 없지 않나 싶다. 이후 그는 티베트자치구에서 비서장과 부서기로 약 6년 동안 일하면서 경력을 차곡차곡 쌓았다. 2006년에는 후진타오(胡錦濤·80) 전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리커창 총리처럼 대망의 공청단 제1서기에 오르게도 된다.
이어 허베이(河北)성 성장과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서기를 거친 다음 2012년 당 제18차 대회에서 고작 49세의 최연소 나이로 정치국원으로 승진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길은 대선배인 후 전 주석과 리 총리처럼 탄탄대로인 듯했다. 일부에서는 미래의 총서기로 부르기도 했다. 실제 당시만 해도 그 이외에는 총서기로 선출된 시 주석의 후계자로 꼽힐 만한 젊은 피도 별로 보이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 주석의 장기집권 시나리오가 구체화되면서 결과적으로 그의 비극은 시작됐다. 절대 권력을 노리는 권부 1인자에게 미래의 후계자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는 불후의 사실을 상기하면 그건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기도 했다. 그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한 없이 자신을 낮췄다. 하지만 결국 비극을 피하지는 못했다.
현재 중앙위원의 신분인 그가 갈 자리는 마땅치 않다. 부총리급 이상의 자리에 보임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거나 은퇴가 예상되는 고위급들이 취임하는 국가부주석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보인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경우 아예 은퇴를 하거나 완전 한직으로 밀려나야 한다. 한때 총서기 후보로까지 여겨지던 그의 신세가 정말 처량하게 됐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