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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보에 밝은 베이징 외교 소식통들의 11일 전언에 따르면 톈안먼 사태는 지난 세기 최대의 민주화 운동으로 비공식적으로는 무려 1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운동은 미완의 성공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당국은 이를 동란으로 규정한 후 결연하게 대응했다. 운동을 주도한 많은 수의 청년, 학생과 시민, 지식인들이 해외로 망명하거나 옥고를 치른 것은 필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들은 중국에 남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운동의 무력 진압에 반대하다 권좌에서 밀려난 자오쯔양(趙紫陽) 전 총서기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정치 비서이자 당 중앙정치체제 개혁연구실 주임을 역임한 바오퉁(鲍彤) 역시 거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운동이 진압된 이후에도 일관되게 자오 전 총서기와 운동을 주도한 청년, 학생과 시민, 지식인들을 지지한 대표적 정계 거물 중 한명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그러나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먼저 자오 전 총서기가 톈안먼 사태 재평가에 대한 비원을 이루지 못하고 2005년 8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9일에는 마침내 그의 충직한 측근이던 바오퉁 역시 세상을 등졌다. 향년 90세로 반혁명분자로 옥고를 치른 뒤 26년 동안 베이징 자택에서 종신 연금을 당하다 유명을 달리 한 것이다. 장례는 오는 15일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에서 열릴 예정으로 있다.
국무원 부장(장관)급에 보임될 수 있는 당 중앙위원에까지 올랐던 그의 부고는 이날 오후 아들 바오푸(鮑樸)가 중국에서는 차단된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세상에 알렸다. 이에 따르면 그는 조혈 기능이 저하되는 혈액 질환으로 올해 3월 베이징의 스지탄(世紀壇)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으나 이날 골수 합병증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의 민주 인사들은 일제히 바오퉁의 별세를 애도했다. 미국에 망명 중인 학생 지도자 출신 왕단(王丹·53)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바오퉁 선생은 지난해 병이 심해지기 전 '6·4 기념관'의 편액을 쓰려 하셨다. 선생은 80년대 중국 개혁개방의 기획자이자 만년에는 체제의 반항자였다. 저는 비록 중공을 반대하나 선생과 같이 일찍이 체제 안에서 고위직에 올랐던 분에게는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고 싶다"면서 고인의 안식을 기원했다. 민주화를 이루지 못한 데에 대한 회환도 묻어나는 애도가 아닌가 보인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당시의 청년, 학생 지도자들은 이제 50대 중반으로 진입하고 있다. 그들보다 선배들은 해외에서 유명을 달리 했거나 거의 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톈안먼 사태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는 아무래도 물리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사태가 망각을 향해 달려간다는 말은 확실히 괜한 게 아닌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