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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문화연 소속 남원 향토사학자인 김용근씨는 광한루 600년의 구전자료를 수집 연구하는 과정에서 일제가 광한루를 재판소와 감옥으로 침탈 사용한 흔적 자료를 찾았다고 7일 밝혔다.
기존 일제 광한루 재판소와 감옥 자료는 사진엽서와 남원 법원의 역사, 광한루 돌기둥의 감옥 설치 흔적이었으나 이번에 광한루 마루 아랫면의 판재와 돌기둥 보의 판재에 적힌 글씨와 돌기둥에 써놓은 암각서, 광한루 감옥에 투옥된 수형자의 수형인 명부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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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씨는 "일제가 광한루를 재판소와 감옥으로 사용한 시기는 1910년부터 1928년까지 18년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앞선 1878년과 1882년의 표기가 광한루 마루판과 돌기둥의 나무 보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분명 광한루 감옥을 만들 때 어디에서 가져온 판재임이 분명해 보이고 그곳이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오던 남원성 안에 있던 원형감옥이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일제는 조선식 원형 감옥을 일본식 감옥으로 만들기 위해 남원성안에 있던 개과천선 우주관을 가진 원형감옥을 해체해 그 자재로 광한루 감옥을 만들었고 그 실체가 지금 광한루 마루 뒷면과 돌 기둥 보에 기록된 한자의 묵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주장이다.
또 김 씨는 "광한루 기둥에 새겨져 있는 네 개의 글자인 石廷化全에서도 광한루 재판소와 감옥의 침탈 실체를 확인 할 수 있는데 광한루 전면 좌측 네 번째 중앙 돌기둥에 새겨진 석정화전의 글씨는 石(돌석), 廷(재판정, 관아정) 化(교화 시킬 화), 全(갖출 전)으로 이는 재판과 교화를 갖춘 돌로 된 완전한 관청"이라는 말로 해석했다.
광한루 재판소와 감옥을 일러 일제는 석정화전이라고 불렀고 그 말은 조선백성을 일본의 식민으로 만들기 위한 재판과 교화의 감옥을 갖춘 돌로 된 완전한 관청이라는 뜻으로 일제는 그 글자를 재판소와 감옥을 가진 광한루 정면의 돌기둥에 새기고 일본식 청사의 이름으로 활용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덧붙여 김용근씨는 "광한루 감옥에 투옥됐던 남원권번의 소리선생이었던 김정문 명창의 수형인명부에서도 광한루 감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데 징역형의 수감내용과 형명을 확인해 보면 구전으로 전해오던 소리꾼들의 독립군과의 정보망 색출을 위한 일제의 공작으로 아편소지의 누명을 씌워 투옥된 점도 확인 됐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