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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연의 오페라산책]25주년의 역량이 돋보인 무대, 일본 신국립극장 ‘탄호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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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원 기자

승인 : 2023. 02. 08. 10:51

'동아시아에서 오페라를 한다는 것'의 의미 되새겨
ⓒMasahiko Terashi  신국립극장 도쿄 제공
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한 장면. ⓒMasahiko Terashi /제공=신국립극장 도쿄
현재 우리나라 공연예술은 코로나19와 불경기로 인한 여파가 워낙 컸던 탓에 아직도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년 만에 다시 방문한 일본 도쿄는 비슷한 조건임에도 사뭇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최근 오페라 '탄호이저'를 관람하기 위해 방문한 신국립극장 도쿄도, 음악회를 보러갔던 산토리홀도 코로나로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국의 공연장에서는 보기 힘든 생기가 있었다.

지난해 신국립극장 도쿄는 25주년을 맞이했다. 성대했어야 할 25주년은 코로나로 많은 제약이 있었다. 그래도 현재 2022~2023년 시즌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25주년 기념 프로그램은 이어지고 있다. 1997년 개관한 신국립극장 도쿄는 일본 최초이자 최고의 국립극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페라, 발레·댄스, 드라마 3개 부문을 각 예술 감독체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1997년 문을 연 이래로 총 750편이 넘는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는 수준 높은 서양 오페라를 선보이는 것과 함께 세계무대에 내놓을 일본오페라를 목표로 꾸준히 일본오페라 창작 작업을 해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2019년 2월 '세계무대에 내놓을 일본오페라 시리즈' 첫 번째 순서로 오페라 '애스터(Asters)'가 무대에 올랐다. 이어서 코로나로 어려웠던 2020년 11월에 시리즈 두 번째 작품인 '아마겟돈의 꿈(A Dream of Armageddon)'을 공연했고 다음해 2월 이를 온라인 스트리밍으로도 선보였다. 이처럼 신국립극장 도쿄는 명실상부 일본을 대표하는 제작극장으로서 일본 공연예술분야를 선도해 나가고 있다.

일본인들은 작곡가 바그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양음악 도입 초기인 20세기 초반에 벌써 바그너협회 일본 지부가 생겼을 정도로 바그너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컸다. 오페라 '탄호이저'도 평일 오후 2시 공연임에도 극장이 가득 차 그의 인기가 여전함을 알 수 있었다. 이번 '탄호이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Masahiko Terashi  신국립극장 도쿄 제공 (2)
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한 장면. ⓒMasahiko Terashi /제공=신국립극장 도쿄
독일 연출가 한스 피터 레만이 연출한 이번 프로덕션은 2007~2008 시즌 초연으로 큰 호평을 받은 무대를 다시 공연하는 것이다. 알레조 페레즈는 오페라 플랑드르의 음악감독으로 있는 주목받는 오페라 지휘자로 이번 작품이 신국립극장 도쿄의 데뷔다. 그리고 세계적 헬덴테너(Heldentenor·바그너 주역을 노래하는 영웅적 테너) 중 한 명인 스테판 굴드가 탄호이저를 맡아 더욱 큰 관심을 끌었다.

서곡이 연주되는 동안 펼쳐진 무대는 이미 15년 이상 지났음에도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투명한 아크릴이 솟아오르며 베누스의 궁전으로 완성되는 모습은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이 궁전은 바르트부르크의 성으로 바뀌는데 향락과 관능의 궁전에서 평화와 고귀함이 넘치는 공간으로의 전환이 매우 정교하고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몰입을 더할 수 있었다.

베누스 궁전에 나타난 무희들의 요염한 몸짓과 함께 1막을 시작했다. 탄호이저의 스테판 굴드와 베누스를 노래한 메조소프라노 에글 시드라우스카이테는 강력한 창과 방패처럼 서로를 찌를 듯이 노래하며 팽팽한 긴장을 조성했다. 두 사람의 이중창은 관능적이라기보다는 지극히 대립적으로 느껴졌다. 베누스의 궁전에 싫증과 회의를 느낀 탄호이저와 그를 잡아두고 싶어 하는 베누스의 유혹이 서로 충돌하는 과정에서 두 성악가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는 가창을 들려줬다.

스테판 굴드의 음성은 1, 2막에서 큰 볼륨에 비해 다소 건조하고 메마른 느낌이었지만 3막에 이르러서는 탄호이저의 절망과 회한을 섬세하게 표현해 명성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환갑을 지난 테너인데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힘과 성량을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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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국립극장 도쿄의 오페라 '탄호이저' 중 한 장면. ⓒMasahiko Terashi /제공=신국립극장 도쿄
엘리자베트를 노래한 소프라노 사비나 크빌락은 이날의 모든 출연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기량을 보여줬다. 맑고 서정적인 음색, 풍부한 성량 그리고 정확한 음정까지, 바그너가 구원의 여성으로 그리던 소프라노 그 자체가 아닐까 싶었다. 볼프람 역할의 바리톤 데이비드 스타우트 또한 우아하고 중후한 음성으로 고결한 인격의 기사를 잘 노래했다. 일본 성악가들도 부족한 사람 없이 다들 빼어난 실력을 보여줘 전체적으로 완벽히 균형 잡힌 무대를 보여주었다. 작품의 백미인 '순례자의 합창' 역시 모든 면에서 출중해 큰 감동을 주었다.

이처럼 성악 파트가 훌륭하게 제 몫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알레조 페레즈가 이끄는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크다고 하겠다. 현악의 움직임은 웅장하면서도 조밀했고, 목관과 금관파트에서도 풍성한 호흡을 바탕으로 매끄러운 선율이 이어졌다. 오케스트라는 성악 파트와 유기적으로 결합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페레즈의 신국립극장 도쿄 데뷔는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이날 오페라는 성악, 오케스트라, 무대장치, 조명, 의상 모두가 빈틈없는 조화를 이루며 탁월한 무대를 만들어냈다. 이 프로덕션은 당시 신국립극장 도쿄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했던 것을 25주년에 다시금 무대에 올린 것이다. 신국립극장 도쿄가 사반세기 동안 착실히 이뤄낸 것들을 보면서 '동아시아에서 오페라를 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손수연 오페라 평론가·단국대 교수


손수연
전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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