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쇳물 나올 때 함성·만세·눈물, 일본인 기술자도 애국가 제창"
일본 기술자, 포항서 지도...한국 기술자, 일본서 연수
포스코 50년, 한일 외교와 중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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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한·일 협력의 원점 한국 수출입국의 초석'이라는 시리즈 특집기사에서 1973년 6월 8일 국영 포항종합제철이 1호 고로에 불을 지피면서 한국 최초의 일관제철소로 가동을 시작했다며 한국은 이 철강재로 사회 인프라를 정비하고, 수출 산업을 일으켜 '한국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고도성장을 선도했다고 전했다.
◇ 닛케이 "포항제철 출범, 한·일 산업 협력의 원점...1973년 1호 고로 쇳물 나올 때 함성·만세·눈물, 일본인 기술자도 애국가 제창"
닛케이는 포스코 출범에는 한·일 산업 협력의 원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자 간 교류가 있었다며 신일본제철의 포항제철 협력부 기술자였던 고니시 코니시(小西敞·87)씨를 인용, 그날 100m가 넘는 고로에 불을 붙인 지 24시간 후 새빨간 쇳물이 불꽃을 튀기며 흘러나오자 300여명의 남자들이 큰 환성을 질렀으며 더러운 작업복을 입은 채 서로 껴안고 만세를 반복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시니씨는 누군가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했고, 자신 등 일본 기술자들도 함께 불렀다며 "그 광경은 특별했다. 기술자로서 만족스러운 일을 할 수 있었다. 인생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회고했다.
한국 정부는 석탄·철광석이 풍부하고, 일제 시대에 건설된 제철소 2곳이 가동 중인 북한에 대항하고,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를 재건하기 위해 일관 제철소 건설 계획을 서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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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50년사'에 따르면 일본 기술용역 팀을 JG(Japan Group)라 불렀으며 포항제철 1기 건설 기간 월 최대 1만9666명의 방대한 인력을 포항제철에 파견, 설비 계획 및 구매·건설·조업 대비·시험 운전 등 모든 과정에 걸쳐 기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포항제철 2·3기 건설까지 그 지원을 유지했다.
박정희 정부가 원한 것은 임해 일관제철소로 그 모델은 야하타제철의 지바(千葉)현 기미쓰시(君津)제철소였다. 이는 철광석과 석탄을 벌크선으로 운반해 자동차 공장 등 수요처 인근에서 철을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포항제철은 이 같은 효율성을 추구한 기미쓰시제철소의 설계 사상을 그대로 답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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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일관제철소 가동에 다수의 기술자가 필요했기 때문에 500명이 넘는 한국 기술자가 야하타와 후지제강이 1970년에 합병한 신일본제철의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釜石)·홋카이도(北海道) 무로란(室蘭)·효고(兵庫)현 히메지(姬路)시 히로바타(廣畑)제철, 일본강관의 가와사키(川崎)시 게이힌(京浜)제철에서 연수를 받았다.
한국 기술자의 연수에 관여한 신일본제철 포항제철 협력부의 나카가와 유타카(中川豊·88)씨는 "모두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에 왔고, 한국 최초의 일관제철소를 절대 성공시켜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본강관 제강공장에서 작업을 배운 포스코 제강부 정용희(78)씨는 "제강로를 본 적도 없었던 우리에게 공장 전체 조업까지 맡겨줬다"며 " '모노즈쿠리((物作り·물건 만들기·장인정신)' 철학 등 계약 이상의 소중한 것을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 "포항제철소 가동, 산업혁명"..."한국 산업구조, 경공업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 반도체 등 신산업 탄생 원점"
닛케이는 포항제철소 가동은 한국 산업구조를 바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LG전자 등의 성장을 뒷받침해 자동차·조선·가전·플랜트 설비 등 수출 주도형 산업 구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송성수 부산대 교수는 닛케이에 "포스코 가동은 한국에 있어 산업혁명"이라며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의 전환, 그리고 반도체 등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킨 원점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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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케이는 포항제철소 건설 프로젝트가 미쓰비시(三菱)중공업·IHI 등 해외 진출의 선구자 역할을 하는 등 일본 설비산업도 수혜를 입었다고 분석했다.
아베 마코토(安倍誠) 일본 아시아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설비업체들에게 포항제철소는 이후 해외 시장개척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도 "일본 철강산업의 경쟁자를 키운 것도 사실로 공과가 있다"고 지적했다.
닛케이는 일본인 기술자 대부분이 포항제철이 모두 흡수하면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의문을 품으면서도 지도에 임했다고 전했다.
열연공장 건설을 위해 포항에 3년간 거주한 와시타 마사아키(鷲田政昭)씨는 "그래도 자사 신입사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몫을 하는 기술자로 키우는 것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 "포스코-일본제철, 협력과 경쟁의 50년, 한·일 외교사와 중첩...포스코, 징용 피해자자원재단에 최초 출원, 50년 협력과 관련"
신일본제철은 1979년 포스코 협력부를 폐지하고, 기술 지원을 중단했다. 포스코는 1980년 전남 광양에 제철소를 만들었고, 1998년 조강 생산량에서 신일본제철을 제치고 세계 1위가 됐다.
2021년 기준 포스코의 조강 생산량은 4296만t으로 세계 6위로 떨어졌고, 일본제철은 4949만t으로 4위가 됐다. 1위는 1억9995만t의 중국 바오우(寶武)강철그룹, 2위는 아르셀로미탈(7926만t)이다.
포스코와 신일본제철은 2000년 전략적 제휴를 맺고 아르셀로미탈 대응에 공조했으나 2010년대에는 신일본제철이 고성능 강판 기술을 부정하게 취득했다며 포스코를 고소하기도 하는 등 때로는 손을 맞잡고, 때로는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이 발자취는 한·일 외교사와도 겹친다고 닛케이는 평가했다.
닛케이는 포스코가 올해 3월 일제 강제 동원(징용) 피해자지원재단에 대해 가장 먼저 40억원을 출연하겠다고 했는데 한국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은 기업이 일본제철인 것을 감안하면 50년 전 일본의 자금·기술 협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