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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을 비롯한 매체들의 27일 보도를 종합하면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겸 국가주석 집권 1·2기인 2013년부터 10년 동안 총리를 지냈던 리 전 총리는 전날 저녁 최근 휴식을 취하면서 머물렀던 상하이(上海)에서 갑자기 심장 쇼크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으나 결국 소생하지 못했다. 향년 68세.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시 주석보다도 2살 연하인 만큼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한(漢)족인 리 전 총리는 안후이(安徽)성 딩위안(定遠)현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수재로 불린 인재답게 베이징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그러나 석사와 박사는 경제학으로 받았다. 그가 총리 재임 시절 유독 법률 지식에 밝은 경제통으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문화대혁명 시절 농촌으로 하방된 이른바 즈칭(知靑·지식청년)인 그는 젊은 시절부터 될 성 부른 나무라고 해도 좋았다. 초창기에 주로 정치적 경험을 쌓은 공청단(공산주의청년다)에서 때문에 엄청나게 빨리 승진도 할 수 있었다. 1993년 겨우 38세의 나이에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올라섰다면 더 이상 설명은 사족이라고 해야 한다. 이후 그는 허난(河南)성 부서기와 성장을 거쳐 2004년 랴오닝(遼寧)성 서기로 이동했다.
이어 2007년 11월의 제17차 전국대표대회(매 5년마다 열리는 전당대회)에서 시 주석과 함께 7명 정원인 대망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멤버가 됐다. 차기 당정 국가급 지도자를 예약했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중국 내외의 정치 전문가들은 그가 5년 후 총서기가 돼 집권할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는 했다. 그 역시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양한 정치적 경험이나 공청단에서 구축한 막강한 인맥을 상기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한다.
그러나 2012년 10월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당정 최고 지도자로 올라선 주인공은 그가 아니라 시 주석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그야말로 대어를 놓친 입장에서는 안타깝기는 해도 2인자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그는 아쉬움을 뒤로 한채 총리로 임명돼 경제통답게 10년 동안 중국 경제를 무난하게 잘 이끌어왔다.
특히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면서 대중의 호응을 얻은 사실은 지금도 종종 회자되고는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때때로 쓴소리 역시 마다하지 않았다. 강력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책인 '제로 코로나' 정책이 한창이던 지난해에는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한 바도 있다.
이보다 앞서 2020년 5월에는 "중국인 6억 명의 월 수입이 1000 위안(元·18만5000 원)에 불과하다"면서 노점상 활성화를 주장하기도 했다. 어떻게 보면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건설했다는 사실을 성과로 강조한 시 주석에 대한 충고성 고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약칭 전인대와 정협)에서 시 주석의 최측근인 리창(李强) 총리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야인으로 물러났다. 당시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고별사를 남겨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이 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큰 화제가 되면서 시 주석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는 이처럼 시 주석과의 운명적 라이벌 관계로 인해 자의 반, 타의 반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갑작스런 그의 심장병 발병이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외신 일부에 나오는 것은 다 까닭이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