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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욱 칼럼] ‘관세 전쟁’ 중후장대(重厚長大) 붕괴 단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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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5. 04. 15. 17:54

이경욱대기자-웹용
아시아투데이 대기자
현대자동차가 미국 현지에서 생산하는 차량은 브랜드만 현대차이지 미국 차(Made in USA)다. 현대차·벤츠·폭스바겐 등 글로벌 브랜드들은 이미 중국·미국·인도 등지에서 자사 브랜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미국 태생의 테슬라는 요즘 중국산 이름을 달고 속속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테슬라Y주니퍼 모델에는 'Made in China'가 적혀 있다. 그런 테슬라는 부품을 수입해 상하이 현지에서 조립 생산되기 때문에 중국차다. 다국적 기업들은 바야흐로 이익이 창출되기만 한다면 국경을 넘나드는 전천후 생산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제아무리 정글 속이라도 이익 확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뛰어드는 게 기업의 속성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각국에 수십%의 관세를 부과하는 이른바 '관세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관세를 급격히 올리겠다고 통보해 세상을 온통 불안하게 했다가, 뜬금없이 시행일을 유예한다고 발표해 글로벌 주식시장의 급등락을 촉발하고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보복성 관세를 매기는 등 전 세계를 관세로 들었다 놨다 하고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 달러를 바탕으로 관세라는 상호주의원칙이 적용되는 룰(Rule)마저 깨고 있다. 지난해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기치로 내세워 당선돼 2번째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는 트럼프에게는 가장 효과가 빠르고 세계 각국을 기축통화국 앞에 무릎을 꿇게 하는 수단으로 관세를 택했다는 분석이다.

미 행정부의 이런 관세 부과 정책은 자국의 과도하게 발행된 국채 이자 부담 경감과 첨단 제조업 기업을 과감하게 유치해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관세 수입으로 세수까지 확대할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펭귄만 살고 있는 곳에도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향후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관세를 회피하려는 의도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중국·유럽연합(EU) 등 일부에서는 맞대응 관세 전략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미국 내부에서도 행정부 촉발 관세 전쟁이 세계 경제의 파국을 몰고 올 수 있다며 반발하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관세 부담을 피하려면 미국 영토에 생산기지를 만들어 팔면 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앞을 다퉈 미국에 공장을 짓거나 미국 회사에 투자하고 있다. 현대차는 수십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을 밝혔다. 미국 현지생산 능력을 기존 70만대에서 120만대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관세 폭탄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생산거점을 일부 조정하기 위한 선제 대응 전략 차원이다.

국내 자동차 산업의 경우 34만명의 인력이 근무하고 있다. 부품업체는 2만개가 넘는다고 한다. 미국 등 해외에 현지공장을 속속 짓게 되면 결국 국내 생산 능력을 감축시킬 수밖에 없다. 국내 생산직 근로자의 인건비가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생산 제품 판로가 제한되는 것은 경영에 타격을 준다. 경영자로서는 생산비 등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나라를 탐색하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해외 공장 비중이 늘게 되고 국내 생산 및 수출 비중이 줄어들게 되면 그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모두가 질 수 있다. 이른바 '제조업 붕괴' 피해다. 중후장대(重厚長大). '무겁고, 두텁고, 길고, 큰 것' 즉 철강·화학·자동차·조선 등의 제조업을 토대로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고 짧은 시간에 세계에도 유례가 없었고 또 앞으로도 없을 선진국 진입을 달성한 우리다. 지금도 조선소나 자동차 공장, 제철소 등 산업현장을 견학하면 없었던 애국심이 생겨난다고 할 정도다. 중후장대는 세월이 흐르면서 경박단소(輕薄短小)로 전환되고 있다.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것'을 의미한다. IT·화장품·제약 등 선진국형 산업 비중이 점차 늘고 있다. 경박단소 비중이 증대된다고 해도 우리의 전통적 무기인 중후장대는 굳건히 버텨야 한다. 국내 군수산업의 팽창을 보면 그게 가능하다.

중후장대는 고용의 버팀목이 돼 왔고 지금도 그렇다. 중후장대가 우리의 토양을 떠나 다른 나라로 속속 이전되는 것은 개별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는 필요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우리의 제조업 몰락을 촉진하는 것 아닌지 우려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관세 전쟁으로 기업·투자자 전체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바로 지금이 우리의 중후장대를 보호하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업과 정부가 모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다. 개별 기업의 해외 투자를 정부가 전체적으로 관리해 국내 산업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관세 전쟁 탓에 야기되고 있는 주가 폭락, 미 국채 하락 압력으로 트럼프가 제 풀에 꺾여 정상화를 택한다고 하더라도 지금은 모두가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때다. 철강업계 관계자의 말이 쟁쟁하다. "기업·정부·정치권 모두가 매 순간 관세 전쟁에서 살아남을 대응책을 신속히 만들고 곧바로 실행에 나서야 할 때다." 그런데 6월 차기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정치가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 것은 아닌지 적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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